Equip for Equality 대표 지나나이디치(Zena Naiditch) 심층 인터뷰

우채윤 승인 2020.11.02 11:05 의견 0
Equip for Equality 대표 지나나이디치(Zena Naiditch)

 

사람이 사람답게 이 사회에서 함께 공존하기 위해 마땅히 누구나 동등하게 누려야 할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권리, 인권.

미국의 Equip for Equality(이하 EFE)는 미국 내 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옹호하는 단체입니다. 국내에도 장애인의 인권 보호와 옹호를 위해 애쓰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의 기관 및 단체가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는 우리와 달리 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옹호하는 P&A(Protection and Advocacy) 제도가 있어, 장애인이 인권을 침해당하면 P&A 소속 변호사들과 활동가들이 나서 장애인을 지원하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이 시스템이 법적으로 주정부와 같은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일리노이주의 대표적인 장애인권리옹호기구 EFE(Equip for Equality)대표 지나 나이디치(Zena Naiditch)와의 인터뷰입니다.

우채윤 미국장애인법(ADA, Americans with Disabilities)는 1990년에 제정되었는데 당시의 자료들을 찾아보면 보수적인 조지 부시 대통령이 급진적인 미국장애인법을 제정하게 된 사건이 매우 특별해 보입니다.

지나 나이디치 저는 조지 부시 대통령이 미국장애인법안에 사인할 때 직접 봤어요. 1990년 미국은 공화당과 민주당원들이 요즘에 비해 더 협동적으로 함께 일했었죠. 또한 공화당원들에게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장애가 있는 가족들이 있었어요. 미국장애인법이 통과되려면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이 법안을 지지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80년대에 매우 중요한 사건이 있었어요. 모든 장애인들이 함께 모인 것이 그것인데, 자폐성장애인은 자폐성장애인을 옹호하고, 시각장애인은 시각장애인을 옹호했어요. 발달장애인들의 가족들은 자신의 발달장애 가족을 위해, 정신적인 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그 자신들만을 위해 옹호해왔죠. 우리는 각자 자신을 옹호하기 전에 장애에 대한 차별로부터 그들 모두를 함께 지킬 수 있는 법적 보호권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매우 존경하는 저스틴 다트(Justin dart Jr.)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었어요. 그의 아버지가 소유한 다트 인더스트리는 타파웨어를 생산하는 회사로 집안이 매우 부유한 공화당이었고 미국장애인을 지지했으며, 공화당과 잘 연결되어 있었죠. 그가 작성한 <장애인에 대한 국가정책>이 미국장애인법의 기초가 됩니다. 그는 공화당과 민주당 상하원 의원들을 만나 법안을 설명하고 설득하며, 법안이 통과될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했어요.

조지부시 대통령이 미국장애인법을 통과시킬 때까지 많은 장애인들과 단체들의 투쟁, 공화당과 민주당원들의 정치적인 노력이 있었어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죠.

우채윤 대표님은 일리노이주의 장애인권리옹호기구인 Equip for Equality가 설립되고, 약 35년 동안 운영해오셨는데, 미국에는 P&A라는 특별한 인권보호 제도가 있습니다. 한국에 없는 제도라 생소합니다.

지나 나이디치 P&A제도가 만들어진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어요. 1965년 미국 ABC 방송 뉴스에서 윌로우브룩(Willowbrook)이라는 장애인 시설 학대사건을 보도했는데, 조사결과 학대와 방임이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지적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할 어떤 장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하게 된 것이죠. 이를 계기로 미국연방의회는 1975년 ‘발달장애지원 및 권리장전법(Developmental Disabilities Assistance and Bill of Rights Act)’을 개정하면서 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옹호하는 P&A시스템을 도입하게 되었고, 윌로우브룩 사건이 발생하고 10여년이 지나서 1977년 10월 1일부터 각 주별로 발달장애인을 위한 보호와 옹호(PADD : Protection and Advocacy for Persons with Developmental Disabilities) 프로그램이 실시됩니다. 이후 P&A시스템의 권한이 조금씩 확대되어 왔습니다.

우채윤 미국 내 대부분의 P&A는 연방법에 의거한 비영리 단체이지만 권한은 주정부와 유사해 법적 권한이 막강하다는 표현이 많습니다. '법적 권한이 막강하다', 미국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건가요?

지나 나이디치 주정부가 무언가를 할 수 없을 때도 우리는 그 무엇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시설에 대해 걱정이 되면 바로 그 시설에 들어가 안팎을 둘러볼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있어서, 서비스를 받는 장애인들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있고, 그들의 보호자나 후견인들의 전화번호를 받을 수 있어요. 기관의 프로그램이 적절한지 점검할 수 있고, 학대가 있는지, 시나 정부에 의해 제대로 관리가 되고 있는지 조사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이 있는 곳이라면 학교, 노숙자 쉼터, 감옥 등 어떤 시설에든 출입하고 조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시작했는데, 어떤 시설이든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느냐 없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감시단체로서 매우 효과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죠.

정부에 비해 매우 작은 기관이지만, 국가기관에 대해 비판적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을 고용해 얼마나 정확히, 신뢰할 수 있게 일하는 지가 중요합니다. 항상 저희는 정부가 우리의 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대답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신뢰도를 확립해 나가는 것이 큰 도전이었고, 목표였습니다.

우리는 P&A를 법적 권한과 연방 자금을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인권단체들이 권한이 없음에도 스스로 P&A와 같이 인권을 보호하고 옹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한국에서도 초창기부터 믿을 수 있는 인권 보호 및 옹호 기관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만약 우리의 의견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지금의 P&A도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국도 P&A와 유사한 시스템이 실시된다면 정부의 보조금을 받으며 변호사들이 일을 하더라도 독립적이며 비영리적인 것이어야 하지, 정부의 일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채윤 정부와 민간이 함께 신뢰성있는 독립된 기관이 중요한 것이군요. 최근 국내 장애인들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지만 특히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 보장은 아직 요원해 보입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후견인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미국에서도 후견인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후견인제도가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후견인 제도, 어떻게 보시나요?

지나 나이디치 미국의 가디언십(후견인제도)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어요. 가족이거나 아니면 가족 외의 다른 사람들이 후견인인 경우인데요. 만약 가족이 없다면 국가기관이나 지방정부 같은 공공기관이 후견인이 될 수도 있죠. 일리노이주의 경우 아주 적은 재산을 가지거나 재산이 없는 장애인의 후견인 역할을 할 국가기관(state agency)이 있습니다. 우리가 제공한 정보에 입각해 최소한의 결정도 스스로 내릴 수 없는 장애인의 경우 공식적으로 그들을 대변할 수 있는 누군가, 바로 후견인이 있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도 후견인들이 제대로 할 일을 하고 있는지 관리되지 않고 있어요. 후견인들이 돌보는 발달장애인이 필요로 하는 건강 관리, 식사 등에 제대로 경비를 쓰고 있는지 등에 대해 점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일리노이주 법에 따르면 풀-가디언십(Full Guardianship)은 발달장애인의 건강관리나 재정적인 결정에 도움이 필요할 때 후견인이 기본적인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이 풀-가디언십에서 최악의 상황들이 비롯되곤 합니다. 따라서 저희의 생각은 전 영역에서 제한된 가디언십이 운영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발달장애인들이 최대한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하고 가디언십은 어디까지나 제한된 영역에서 시행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미국에도 후견인에게 모든 법적 권리를 잃은 많은 발달장애인들이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이 18세가 되면 대부분 부모들이 가디언십을 받는 데, 어떠한 점검이나 제약이 없어요. 더군다나 미국의 전문의라면 모두 후견인 추천서에 사인을 할 수 있어요. 정형외과 의사도 가능하다는 겁니다. 미국의 후견인 제도는 전반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요. 그럼에도 후견인 제도가 과용되지 않는다면 발달장애인을 위해 꼭 필요한 제도입니다.

우채윤 한국에서 발달장애인에 대한 권리침해 또는 발달장애인이 가해자가 되는 사건이 발생되었을 경우 법률적으로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경찰이나, 검찰, 법원의 담당자들이 발달장애인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불합리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EFE에 특별히 이러한 문제를 대비한 시스템이 있을까요?

지나 나이디치 P&A는 범죄로 기소된 장애인들을 위해 일할 수 있게 하는 자금이 있어요. 또한 경찰관들에게 발달장애인들의 특성에 대한 훈련도 실시합니다. 이러한 시스템을 장애인 연관 업무를 담당하는 경찰들과 오랜시간 함께 일하며 유지하고 발전시켜왔어요. 서로 다른 특성의 장애를 가진 가해자나 피해자를 상시 접하게 되는 경찰들을 훈련시키지 않는 것은 장애인들의 인권을 지켜야 할 경찰들을 무방비 상태로 만드는 일입니다. 시카고 경찰에는 장애인을 전담하는 특별 부서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많은 경찰들이 장애별 특징과 대응방법을 잘 알지 못한 채 매일 장애인들을 거리에서 마주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경찰들을 훈련시키며 경찰이나 법 집행기관과 함께 일해온 것은 큰 의미가 있는 일이지요.

우채윤 혹시 발달장애인이 범죄의 가해자로 몰렸던, 기억에 남는 사건, 있으실 것 같은데요.

지나 나이디치 공공도서관을 매우 사랑하는 지적장애 여성이 있었는데, 도서관에 가서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한 하루의 일과였어요. 더불어 그녀는 아기도 매우 좋아했었는데, 어느날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아기가 보이자 아기 옆에 와서 가까이 보려했고, 아기의 엄마는 누가 자기의 아기를 데려가는 줄 알고 매우 놀랐던 것입니다. 도서관은 지적장애인인 그녀의 도서관 출입을 금지했고, 그녀가 다시는 평생, 도서관을 방문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 상황을 개선하고 도서관의 결정을 바꾸기 위해 대화하려고 했지만 거절당했어요. 어쩔수없이 도서관에 소송을 제기했는데, 특별한 결과가 나타났어요. 판사는 발달장애를 가진 여성이 법정에 서는 것 자체가 도전이고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우려했고, 그래서 법정 대신에 재판을 도서관 안에서 열었어요. 상상해보세요. 도서관을 사랑하는 그녀가 다시는 못 갈줄 알았던 도서관에서 얼마나 행복하고 편안하게 재판을 받을 수 있었을지 말입니다. 그녀는 위험한 인물이 아니었어요. 단지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이 많고, 아이를 사랑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내용들을 증거로 제출했고, 그녀는 다시 도서관에 갈 수 있었습니다.

우채윤 인간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누린 것이지만, 참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발달장애인에게는 일상을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이어야 함에도 큰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국내에서는 장애인들의 탈시설에 대한 논의가 거세지고 있는데, 탈시설을 한다는 것은 지역사회에서 이웃들과 함께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적, 물적 지원을 받아 탈시설을 하더라도 함께할 이웃들, 비장애인들이 발달장애인들이 혐오와 기피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이라고 받아들여야 할텐데요. EFE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인식을 전환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지나 나이디치 미국에서도 오랜 시간 동안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거주해야만 한다는 사고방식을 바꾸려 노력해왔어요. 그런데 우리는 매우 오랜 시간동안 편견과 차별에 대해 싸워왔고, 그 싸움은 인종차별에서 시작되었어요.

많은 연구들이 있었는데, 그중 ‘흑인이나 타인종이 이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 백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교육을 받은 백인들이 흑인이나 타인종에 대해 훨씬 더 잘 이해할지 비교하는 연구가 있었죠. 그런데 그 연구의 결과는 사람들이 인종차별에 대해 교육을 얼마나 받았는지가 아니라 흑인들과 타인종들이 그들의 이웃으로 이사하고 같은 직장에서 일하기 시작하는 것, 함께 살기 시작할 때 더 긍정적인 태도 변화를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흑인 ‘조’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것보다 함께 살고 함께 일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조’에 대해 알게 된다는 것이지요.이 연구에 비추어 보면 발달장애인들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도입하고 있는 소규모의 통합(자립) 주택 제도는 가능한 한 기존 가정의 모습과 비슷한 구조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10명 이상의 큰 규모의 집이 아니라 이웃의 평범한 집들처럼 한집에 서너명의 사람들이 모여 구성원끼리, 이웃끼리 서로 알아가도록 해주는 것이죠. 장애인들이 조금 다르지만 그럼에도 평범한 우리 이웃이라는 생각이 들면 아마도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의 일원이 되는 데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고 응원할 것이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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