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점을 찾을수록 아이들은 빛이 난다.

저자 서울봉천초등학교 교사 이종필

우채윤 승인 2020.11.18 11:30 | 최종 수정 2020.11.18 19:17 의견 0
Photo by Ray KIM

저자 서울봉천초등학교 교사 이종필

저는 특수교사입니다. 초임교사 시절,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였습니다. 방학에도 학교에 나와서 다음 학기 수업 준비를 하고, 모임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8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말입니다. 아이들에게 정성을 다하다 보니 가르치는 학생들 중 장애가 심한 편이지만 한글도 어느 정도 익히고, 2년 정도 지나면 쉬운 문장을 읽는 경우도 있었고, 그럴수록 저는 더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하고, 더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그때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글을 알아야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취업에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가르쳤던 그때의 제자들이, 지금 본인들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졸업한 제자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많은 제자들이 고등학교 졸업 후 집에만 있거나, 재능과 상관 없이 매우 적은 돈을 받으며 일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가르쳤는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삶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인가’ 라는 고민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그동안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쳤으나 잘못 가르쳐 왔구나.'

그때는 막연하게 내가 학생들의 공부에만 욕심을 부린 것이라고, 아이들의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한탓이라고 혼자 자책하고 울며 괴로워했습니다.

십여 년이 지나고 얼마 전, 책 <증상이 아니라 독특함입니다>를 읽게 되었고, ‘내가 잘못한 것이 맞구나!’, ‘열심히 가르쳤지만, 아이들의 강점에 주목하지 못했구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해온 수업은 아이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활동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부족한 점만이 눈에 보이며, 그 부분을 채우기 위해 방학에도 출근하고, 숙직 기사님의 눈총을 받으며 밤늦게까지 수업준비를 했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친절한 선생님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부족한 부분을 채우느라 힘들고, 학교가 싫어지고, 어느 순간 한계도 왔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공부가 어렵다고, 학교생활이 힘들다고 온몸으로 의사표현을 했음에도, 아이들이 보여주는 행동이 의사표현인지도 모른 채 문제행동이 심해졌다고 아이들을 탓했고, 힘들어도 해야 할 것들은 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다그쳤습니다.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존감입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중심으로 아이들을 만나자고 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한 명 한 명 살펴보니 좋아하고 잘하는 것들이 있었어요. 곤충 관련 상식이 풍부한 아이, 정리정돈을 잘하는 아이, 박자 감각이 뛰어난 아이, 암기력이 우수한 아이, 뭐든지 뚝딱 만들어 내는 아이, 돈 계산을 잘하는 아이. 시간을 잘 지키는 아이, 사람들을 좋아하는 아이...

이전과 같았다면 수업시간에 교실 밖으로 자주 나가는 아이, 글자를 모르는 아이, 고집이 센 아이, 잘 우는 아이, 공간지각력은 뛰어나지만 스스로 신변처리를 잘 못하는 아이, 감정기복이 심해서 갑자기 화를 내는 아이, 일상생활은 잘하는 편이지만 학습이 부족한 아이로 바라봤을 겁니다.

이제, 정리정돈을 잘하는 아이는 그 깔끔한 정리정돈 솜씨로 카페에서 일하고 있으며, 곤충을 좋아하고 돈 계산을 잘하던 아이는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여행하고, 박자 감각이 뛰어난 아이는 복지관 풍물패로 활동하며 일 년에 서너번씩 공연을 합니다.

강점을 기반으로 만나기 시작한 아이들은 나의 걱정과 달리 다들 자신만의 삶을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물론, 발달장애인을 보는 세상의 시선도, 제도도 예전보다는 좋아졌을 것입니다.

요즘 부모님들의 모습에서 종종 처음 교직 생활을 시작했던 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이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고 일주일에 대여섯 개의 치료실을 다니고 온 에너지를 모두 쏟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시간적 여유도, 경제적 여유도, 나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아이에게 올인하며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부모님의 모습 말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부분의 활동이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으로 집중되어 있습니다. 부모님이 그렇게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하는 그 사이에 아이는 표정을 잃고, 활기를 잃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제는 아이를 장애명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파란색을 좋아하는 아이, 정리되어 있는 것을 편안하게 생각하는 아이, 규칙적인 일과가 더 편한 아이, 애교가 많은 아이, 비즈공예를 좋아하는 아이,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 활동적인 아이, 친구들과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와 같이 아이의 흥미와 강점을 중심으로 바라보고 강점이 잘 발현되도록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요?

강점을 중심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아이의 가능성에 한계를 두지 않고, 아이가 가진 강점이 발현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정하면서 아이들과 만나고 싶은 분들에게 토마스 암스트롱, <증상이 아니라 독특함입니다>를 추천합니다.

내가 이 책을 쓴 것은 부정적인 면으로 규정되는 사람들이 가진 긍정적인 면을 연구하는 진지한 캠페인을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략) 신경다양성 뇌를 가진 사람들이 모든 편견에서 해방되고 자신의 삶에서 온전한 자기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p.57)

토마스 암스트롱, <증상이 아니라 독특함입니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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