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매거진, 호주 교육 연재 두 번째> 우리는 온라인 수업 중입니다

저자 이루나

우채윤 승인 2020.12.19 13:17 | 최종 수정 2020.12.20 17:56 의견 0
Photo by Scott Graham on Unsplash


* 발행인 주

발달매거진에 참여하시는 저자분들의 원고는 대부분 최소한의 편집만을 거쳐 원본 그대로 게시됩니다. 발달매거진은 부모님과 학생들이 이해하기 쉬운 내용을 지향하고 있어, 간혹 내용의 이해를 돕고자 약간의 배경지식이나 설명을 제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호주에서는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서 교과서를 사용하지 않으며, 국가가 제시한 성취기준에 따라 매년, 각급학교 교과목별로 협의를 통해 교사주도의 교육과정을 구성합니다.

그중 IT 교육은 일상적으로 교사들이 개별적으로 구성한 교육과정 내에서 이루어져 왔습니다. 더불어 초등학교까지 장애, 비장애 아동의 완전통합교육이 실시되고 있기 때문에, 장애아동에게도 개별적인 맞춤형 IT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호주 초등학교는 한반에 26명~28명 수준이며, 완전통합교육으로 담당 교실에 장애아동이 있어 일반교사 혼자 감당하기 힘든 경우, 보조교사(한국의 특수교육실무사와 비슷한 제도이지만, 특수교육에 대한 이해가 매우 높은 전문적인 보조교사입니다)가 투입됩니다. 호주는 한국보다 교사의 행정업무가 적은 편이지만 행정업무가 여전히 존재하므로, 교사들은 지속적으로 행정업무 경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호주 공립학교 교사는 한국과 달리 임용고사 제도가 아닌 학교별 채용으로 이루어지고 따라서, 공무원의 신분이 아니며, 교사의 월급은 정부에서 지급합니다. 공무원으로서 받을 수 있는 신분상의 안정적인 이점은 없으나, 다른 직업군과 달리 방학이 보장되고, 그외는 호주 내 모든 직업군과 비슷한 수준의 복지와 처우(호주 노동자는 보통 주당 38시간 근무이지만, 한국보다 노동의 형태가 매우 다양합니다. 주 4일 정규직, 주 5일 정규직, 주 3일 파트타임 등)가 보장됩니다.

저자 이루나

“능력이란 다수의 횡포에 불과하다. 만약 대다수의 사람들이 팔을 퍼득거려서 하늘을 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장애가 될 것이다.” - 앤드류 솔로몬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강박과 불안이 높은 아들 벤(가명)에게 일년에 한번 정도 틱장애가 찾아오곤 한다.

(발행인 주 : 강박과 불안이 틱의 원인은 아니다. 틱의 악화요인이 된다.)

호주로 이민을 오고 영어 한마디 할 줄 모르는 벤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후 몇 달 만에 처음으로 틱이 나타났다. 그 뒤로 해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잊을 만 하면 나타나는 단골손님이다.

올해의 원흉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장기간의 온라인 비대면 수업이었다. 내가 사는 빅토리아주(멜버른이 속한 주)는 올해 두 차례 전면적인 온라인 수업이 실시되었다. 1차는 4월 중순에 시작해서 8주, 그리고 2차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7월 말부터 9주간의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었다. 발달이 다른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전면적인 온라인 수업은 매일매일이 살얼음판 위에서 아슬아슬한 곡예를 수행하는 고난도 기술과도 같았다.

빅토리아주 교육부에서는 나름 다양한 방식으로 재난의 시대에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될 학교의 구성원들, 예를 들면 장애아동이나 취약 계층 아동들에게 먼저 지원 정책들을 제공했다. 예를 들면 일반 학교에는 강력한 봉쇄령을 내려도 특수학교는 개방을 해서 부모들이 등교를 선택하게 했고, 일반학교에서도 장애 아동들과 취약 계층 아이들에게 등교교육의 최우선권을 제공했다. 다시 말하면 일반초등학교에 다니는 벤도 부모가 희망하면 등교가 가능했고, 출근하는 교사들이 온라인 수업과 돌봄 지원을 해줄 수도 있었다. 평상시에 장애/비장애 완전 통합을 추구하는 호주의 초등학교 대부분은 특수학급이 존재하지 않으니, 벤의 학교에서는 일반 교사 한 명과 보조 교사(한국의 특수 실무사) 한 명을 팀으로 구성해서 긴급 돌봄 교실에 배치하였다.

벤은 본인이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활동이나 과제는 상대적으로 집중이 어렵고, 시각적 학습자이고, 한 활동에서 다음 활동으로의 전이(Transition)가 고역이고, 좌절과 실패의 순간엔 화를 활화산처럼 뿜어대기도 한다.

비장애아이들도 학교에서 제공하는 모든 과제를 성취 기준에 맞춰 ‘엄마표 온라인 수업’에 적용하라하면 제대로 수행해 낼 아이들은 흔하지 않다. 그런데 심지어 벤처럼 발달 장애를 지닌 아이를 하루 이틀도 아닌 몇 달 동안 온라인 수업을 시키라 하면, 나는 인류의 모든 성인군자들을 불러 모아도 속수무책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름 수년간 열심히 쌓아 올려온, ‘친밀한 부모와 자식 관계’란 공든 탑 마저 와르르, 붕괴될 위험에 처했다. 더군다나 과제 하나 돕고 돌아서면 점심시간, 점심 먹고 나면 간식 시간이 돌아오니 이건 차라리 한여름 콩밭에 가서 풀을 뽑는 게 쉬워 보였다.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외치고 있었다.

“엄마도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담임선생님 도와주세요"

어쩔 수 없이 또다시 <담임 찬스> 카드를 뽑아 들었다. 담임 교사 제시(가명)는 벤에게 맞는 개별화 맞춤 온라인 수업으로 몇 가지 제안을 했다.

- 원하는 시간을 협의 후 학교에 보내서 부모의 고충을 덜기

- 과제의 양을 벤에게 맞게 재조정하기

- 긴 작문 시에는 손 글씨가 아닌 타이핑으로 대신하여 부담을 줄여주기

-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화상 수업과는 별도로 수준별로 구성된 소규모 그룹 화상 수업을 늘려 벤에게 과제들을 다시 이해시키고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하도록 격려하기

- 벤과 친한 학급 친구들을 그룹으로 모아 좋아하는 게임을 화상으로 진행하며 온라인 수업의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 벤이 과제를 이해하기 쉽게 시각적 자료를 더 많이 제공하기

- 쉽고 간결한 언어로 과제를 단계별(step by step)로 제시하는 설명을 동영상으로 올려주기

이처럼 발달이 다양한 아이들을 위한 맞춤형 전략들을 보내왔고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쓰나미가 몰아치는 망망대해에 떠있는 우리 가정의 배에 제시가 올라타니 위태롭고 고달팠던 여정이 견딜만한 수준이 되었다. 벤의 고래 심줄 같은 고집에 학교의 긴급 돌봄 교실에 보내는 일은 포기했지만, 담임 교사를 좋아하고 신뢰하는 벤은 담임의 도움으로 거의 대부분의 과제들을 소화해 냈다. 솔직히 이럴 때는 자식이지만 얄밉기도 하다.

‘엄마가 말하면 귓등으로도 안 듣는 놈이 담임 교사 한 마디에 꿈뻑 넘어 가는 구만!’

벤이 곧잘 따라가서 방심하다 벤이 보내는 ‘빨간’ 신호를 놓쳤다. 2차 온라인 수업이 장기화되고 8주차가 되면서 완벽주의자인 벤의 과제(task)에 대한 스트레스와 불안의 레벨이 점점 높아지더니 급기야 틱이 발생했다.

처음엔 눈만 깜빡이더니 며칠 뒤에는 킁킁거리고, 며칠 뒤에는 안면 근육을 씰룩이고, 며칠 뒤에는 혀를 말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들불처럼 넘실대는 다양한 틱을 바라보고 있으면 엄마는 망연자실해진다.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냅둬!” 가 틱의 가장 좋은 대처법이라고, 책에도 전문가들도 말을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어 보면 머리로 이해하는 일과 실전은 따로 논다. 등교일은 다가오는데 저 상태로 면대면 수업을 하다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건 아닌지, 살아 움직이듯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틱이 더 심해져서 목을 뒤로 꺾기라도 하면 어쩌지, 이러다 장기전으로 가서 뚜렛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심해져서 약물 복용을 해야 되는 건 아닌지… 엄마는 심장이 타 들어간다.

지금은 조난 상황. 다시 전문가들을 우리 배에 태우자

틱 관련한 정확한 정보와 후속 조치들을 진두지휘할 소아과 발달 전문의 캐서린(가명)과의 약속을 잡고, 불안과 스트레스를 관리해줄 상담사와 일정을 잡고, 온라인 수업과 코로나19 제한 조치들로 인해 신체 운동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벤을 위해 작업치료사(Occupational Therapist)와의 일정도 배치했다.

물론 코로나 비대면 시대니 모두가 화상으로 진행했다. 빅토리아주 정부가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면서 내년 3월까지 모든 의료기관들의 전화와 화상 진료를 전면 허용해서 환자와 의사가 융통적으로 선택하도록 했다. 특히 온라인 수업이 발달장애 아동들과 가족에게 미칠 막대한 어려움과 고충을 고려해서 모든 치료사들에게도 화상 컨설팅과 치료를 열어 주어 부모가 선택하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우리 가정의 배에 다양한 팀들이 합류했다. 전문가들-가정-학교가 팀으로 작동하니 한결 수월해졌다. 물론 벤의 틱이 하루 아침에 좋아질 리는 만무하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각적으로 벤을 지원한다는 사실 자체가 위로고 안심이었다. 캐서린이 벤에게 발달장애 진단을 내리면서 들려준 말이 헛된 약속이 아니었음을 실감하게 됐다.

“진단은 꼬리표를 달아 주는 게 아니라, 부모가 혼자 오롯이 진 짐을 각각의 전문가와 학교와 정부와 지역사회에 나눠주기 위해서 필요한 절차에요. 그동안 고생 많이 했어요. 이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팀으로 구성해서 벤에게 가장 최적화된 지원을 제공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이제부터 부모는 한 시름 놓고 벤의 약점과 어려움들 보다는 강점과 재능에 집중하고, 더 많이 사랑을 주도록 하세요.”

면대면 수업이 다시 시작되었다. 틱 증상이 심해진 '벤'은 학교에 적응할 수 있을까

면대면 수업이 시작되어 학교로 돌아간 벤에게 교사의 이해와 역할은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문가와의 상담 내용과 다양한 전략들을 담임과 공유하고 학교에서 벤의 상태에 대해 문의했다. 학급 친구들이 벤의 틱에 대해 언급을 하는지, 수업 중에 틱이 어느 정도 발현되는지, 옆 짝꿍이 불편해 하지는 않는지, 긴 온라인 수업 뒤에 시작한 학교 수업은 잘 따라가는지 말이다.

빅토리아 주 정부에서는 장기간의 온라인 수업 후에 학교로 돌아간 아이들의 적응을 돕기 위해서 부모와 학교가 동의하면 아이들을 만나고 있던 감각통합사나 상담사를 학교로 파견해서 아이들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낮춰 적응을 돕도록 적극 권장했다. 실례로 한 지인은 IEP(Individualized Education Plan, 각각의 장애 아동의 특성에 맞게 구성되는 개별 교육 목표) 회의에 아이가 만나고 있는 소아과 발달 전문의를 줌으로 연결하여 교사와 학교측에 해당 장애에 대한 이해와 전략들을 전수하기도 했다. 즉, 재난 상황인 만큼 지원이 시급하고 절실한 아동이 있다면 가능한 모든 상상력과 방법들을 동원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다.

혹시 담임이 원한다면 벤이 만나고 있는 작업치료사를 학교로 파견해도 되는지 묻는 나의 메일에 제시는 다음과 같이 답장을 보내왔다.

“벤을 돌보고 가르치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아서 제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에요. 그리고 교사인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 부담 갖지 마시고 학교에서 필요한 지원이나 좋은 전략들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또한 벤의 발달과 성장에 대한 판단과 결정을 내릴 때 교사인 저의 어려움은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었다.

“부모가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았다면 저는 벤이 발달장애를 지닌 아이라고 상상도 못했을 거예요. 벤 뿐만 아니라 교실에 있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각자가 필요한 요구(needs)들이 조금씩 다르고, 활동에 따라 도움이 필요한 순간들이 다를 뿐이에요. 그리고 벤을 지원하는 방법은 다른 모든 아이들에게도 적용되고 도움이 되는 방법이지 특별히 벤만을 위한 방법도 아니랍니다. 벤은 학교에서 잘 생활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마침내 나는 아들의 틱 대신 근심을 떠나 보내게 되었다.

저작권자 ⓒ발달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