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매거진, 호주 교육 연재 네번째> 치료가 필요하다고요? “애초에 벤에게는 치료할 대상이 없어요”

저자 이루나

우채윤 승인 2021.05.06 10:17 | 최종 수정 2021.05.06 15:52 의견 0

저자 이루나

Image by Kohji Asakawa from Pixabay

치료가 필요하다고요? “애초에 벤에게는 치료할 대상이 없어요”

“I wasn’t a failed neurotypical person. I was a perfectly good Autistic person. (나는 실패한 정형인이 아니다. 나는 자폐인 그 자체로 완벽하게 괜찮다.), Dr. Jac den Houting

엄마가 달라졌다. 이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자폐인 아들과 비자폐인 엄마가 서로 접속하고 공존하려면 피해 갈 수 없는 통과 의례다. 엄마는 평생을 비자폐인의, 비자폐인에 의한, 비자폐인을 위한 세계만 알았으니 엄마가 먼저 달라지지 않으면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방정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폐와 자폐인 벤은 내 인생의 깨달음이고 통찰이고 구원이 되었다.

내가 알던 세계가 극도로 제한적이었다는 인식, 타인들의 자폐에 대한 무지와 편견과 혐오를 보면서 벤을 만나기 전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낯뜨거움, 매일 나의 말과 행동과 눈빛 마저도 점검하며 살아야 한다는 자각에 이르는 길, 자폐인 아들을 이해하며 살려고 발버둥 치다 보니 마침내 이르게 된 깨달음들이다.

벤을 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알지 못했을 다양하고 다채로운 세계, 나는 이제 세상을 ‘자폐인의 프리즘’을 통해 읽어내는 일이 습관이 되었고, 그리하여 결국 내 안에 존재하던 수많은 경계들이 희미해졌다. 처음에 자폐인 아들이 내게로 왔을 때 내 삶이 폐허로 무너진 줄 알았는데, 어쩌면 진짜 무너져 내린 것은 내가 가졌던 옳거나 정상이라고 믿던 수많은 고정 관념과 환상들이 아니었을까. 당신은 축복받은 엄마군요, 벤에게 진단을 내리며 말해 주던 소아과 전문의 캐서린의 말은 옳았다.

벤은 만 5세경에 “엄마 표 진단”을 받았다. 그후 만 7세에 공식적으로 “자폐성 장애(ASD, Autism Spectrum Disorder)와 동반증상으로 AD(H)D(충동성과 행동성이 큰 경우의 ADHD와 충동성과 행동성이 낮아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의 ADD를 함께 표현하기 위해 괄호를 사용함) 진단을 받을 때까지 불안은 엄마의 단짝 친구였다.

벤의 경우 기능들이 좋은 편이라 자폐적 특성들이 확연히 드러나지 않다 보니 역설적으로 부모는 딜레마에 더 시달렸다

마음 한켠에서는 굳이 진단을 내려 ‘자폐인’이란 불필요한 낙인을 찍어 줄까 두렵고, 다른 한편에선 조기에 진단을 내려주지 않아서 전문적이고 효과적인 도움과 치료들을 놓칠까봐 전전긍긍했다. 수도없이 마음을 저울질 하느라 바빴다. 지금 호미로 막을 일을 방치했다가 나중에 가래로도 못 막으면 어쩌지, 공포는 주야로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어차피 낙인이 찍혀야 한다면, 타인들이 내려주는 부당하고 편견과 혐오로 가득한 낙인(괴짜, 이상한 애, 문제아, 또라이, 찐따, 게으른 아이…)이 아닌 정확한 낙인(자폐인)을 전문가와 부모가 안전하게 내려주자.’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일등공신은 성인 자폐 당사자들의 고유하고 진실된 증언들이었다. 참고로 호주에는 자폐성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성인들이 뒤늦게 진단을 받는 경우가 증가하고, 자녀의 진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부모 자신들도 자폐인임을 인식하고 함께 진단을 받는 경우도 늘고 있다. 그래서 당사자들의 ‘자폐인의 자긍심 운동(Being proud to be Autistic)’과 그들의 정체성과 문화를 ‘하나의 문화’로 정착시키는 운동이 확산되고 있으며, Jac den Houting 박사처럼 성인이 되어 자폐 진단을 받고 자폐 분야에 뛰어 들어 자폐 당사자가 직접 자폐성 장애 분야를 공부하고, 자폐 당사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를 하기도 한다. 한편에선 성인 자폐인들이 후세대 자폐인들의 교육, 멘토, 상담, 가족 컨설팅, 자폐인들의 인권옹호 운동, 활동가로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그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진단을 받으면 엄마 노릇에만 충실하고 싶었다. <엄마, 교사, 치료사> 이중 삼중 생활은 진절머리가 났다

밤잠을 줄이고 지친 몸에 커피를 들이키며 자폐 관련 원서들을 읽는 것도 지쳤고, 바짝 집중하고 유투브에서 영어권 전문가들의 강연을 듣는 일도 버거웠고, 그 안에서 신뢰할 만한 정보를 추려내어 벤에게 맞게 재구성하여 적용하는 일도 벤이 커가면서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엄마 노릇까지 곁들이다 보니 이것은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권장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전문가의 역할은 전문가에게, 엄마는 엄마 역할에 충실하는 게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벤에게는 ABA 치료가 적절하지 않아요

“벤에게는 적절하지 않은 치료법이에요. 효과가 있다고 모든 자폐인에게 적용되고 효과가 나타나는 치료법도 아니랍니다. 벤은 기능이 좋고, 또래 아이들과도 제법 잘 어울리니 소규모 프로그램이 훨씬 효과적이에요.”

웬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벤에게 필요한 치료나 상담이나 프로그램 등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ABA 치료에 대해 묻자 캐서린이 질문을 단칼에 잘랐다. 미국 쪽에서 발행된 자폐 관련 책을 읽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면 ‘약방의 감초’ 처럼 항상 언급되는 치료법이 응용행동분석(ABA, Applied Behaviour Analysis) 이어서 은근 기대를 하고 있었나 보다. 캐서린은 아주 못을 박았다.

“제가 앞으로 벤을 만나면서 내리는 모든 판단과 결정에서 가장 우선 순위를 두는 것은 부모님의 어려움과 요구가 아니라 벤이란 점을 기억해 주세요.”

그 순간은 혼동스럽고 서운하기도 했다. 그래서 다시 책에 매달리고, 주변의 성인 자폐 당사자들에게 질문하고, 호주의 국가장애보험제도(NDIS, National Disability Insurance Scheme)를 공부했다.

“I am Autistic (나는 자폐인이에요).”

ABA? 우리의 자율권(Autonomy)과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치료는 나의 아이들에게 거부하지만 그 치료를 받는 아이들 부모의 결정과 판단을 존중해요

보조교사 자격증 과정의 첫 수업에서 이런 멘트를 날리며 교실을 압도하는 소개를 한 엘리는 내 영감의 원천이다. 두 아들에게 자폐성 장애 진단을 내려 주면서, 본인도 자폐 진단을 받은 후 자폐인의 인권 옹호와 어린 후세대 자폐인들의 교육권을 돕고자 보조교사가 되기로 했다는 그녀. 자폐인에게 치료, 특히 ABA란 어떤 의미냐고 묻자 엘리가 이렇게 들려줬다.

“자폐를 우리 가족의 정체성과 문화로 여기는 사람으로서, 자폐인의 고유한 특성들을 고치고 바꾸고 치료할 대상으로 여긴다는 자체가 아주 불편하고 모욕적으로 느껴져. 그래서ABA처럼 우리의 자율권(Autonomy)과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치료는 나의 아이들에게 거부하지만 그 치료를 받는 아이들 부모의 결정과 판단을 존중해. 내가 우리 아이들을 언어재활사나 감각 통합사에게 보내는 이유는 자폐인의 정체성을 바르게 이해하고, 비자폐인의 문화도 교육 받아서 비자폐인들과 수월하게 어울려 살게 하려는 것이지 우리 아이들을 비자폐인으로 만들고 싶어서가 아니야.”

호주에서는 자폐의 등급에 무관하게 진단을 받으면 국가장애보험제도의 지원 대상이 된다. 벤이 진단을 받고 NDIS에 등록을 한 후에 각종 상담, 언어재활사, 감각통합사 등과 이루어지는 개별적 또는 소규모 활동이나 프로그램들, 활동 지원사 서비스 등의 비용은 정부가 책정한 펀드(일년간 책정된 지원 금액)에서 사용된다.

장애 아동들에게도 비장애 아동들이 누리는 일상과 아동으로서의 권리가 최대한 유지되고 보장되도록 방향이 맞추어져 있다

이 과정에서 깨달은 점은 장애보험 제도가 해당 당사자를 중심에 두고 각 분야별(부모, 전문가, 학교 교사, 활동 지원사, 지역사회 등) 관련된 사람들을 팀으로 작동하게 묶어 준다는 사실이다. 즉, 해당 아동의 치료의 종류나 횟수, 치료 비용 등을 부모 혼자서 결정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종합하여 책정하고 펀드를 결정한다. 그렇다 보니, 아동들을 치료실이라는 갇힌 공간에 머무르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사가 밖으로 나오고, 부모의 요청이 있고 필요하다면 타 센터의 치료사가 모여 협업을 하고, 치료사나 상담사가 학교로 가서 교사를 교육시키고, 치료실에서 배운 교육이나 기능을 활동 지원사 서비스를 제공해서 실생활에서 접목하고, 지역 커뮤니티로 나가서 적응하도록 유기적으로 작동을 한다. 즉 장애 아동들에게도 비장애 아동들이 누리는 일상과 아동으로서의 권리가 최대한 유지되고 보장되도록 방향이 맞추어져 있다.

예를 들면, 벤은 소아과 전문의 캐서린이 추천해준 소규모 프로그램을 2주에 한번씩 참여하고, 수업이 끝나면 상담사가 담임에게 피드백을 보내서 학교에서도 일관되게 벤의 성장을 도와줄 것을 권장한다. 일주일에 한번씩 활동 지원사랑 스포츠 클럽에 다니고, 볼링도 치고, 음식점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법을 배우고, 마트에 가서 장보는 연습을 하면서 치료실에서 배운 내용을 지역사회에 참여하며 다지게 돕고 자립을 훈련시킨다.

특히 당사자 본인의 자율권과 자유가 침해될 소지가 있어 논쟁이 되곤 하는 치료법들, 예로 행동주의적 접근의 치료들은 정부의 장애보험제도에서 치료사의 자격, 치료의 절차와 규정, 유의 사항 등을 제시한다. 가령 아동을 만나고 있는 전문가들의 소견에 근거해서, 아동이 만나고 있는 타 치료사와의 협업 조건, 또는 경험이 많은 치료사의 목도 아래에서만 시행되도록 해서 당사자와 치료사의 안전과 권리를 함께 보호하고, 이런 기준들을 충족 할 때에는 치료비를 지원한다.

넌 학교 친구랑 자폐인 친구들 중에 누구랑 노는 게 편해?” “나는 둘 다 좋은데…”

어느 날 방과 후에 소규모 프로그램에 가는 길에 벤이 물었다.

“엄마, 이 프로그램에 오는 친구들은 모두 나처럼 자폐인이야?”

“그래. 학교에 있으면 비자폐인 아이들이 많아서 네가 외로울지도 몰라.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 오면 너처럼 세상을 다르게 보는 멋진 친구들을 만날 수 있거든. 근데 너 이 친구들하고 노는 거 좋아?”

“너무 재미있어.”

“잘됐다. 세상엔 한 명도 똑같은 사람이 없고 세상은 너희들 같이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꼭 필요해. 그게 너의 재능이야. 그런데 넌 학교 친구랑 자폐인 친구들 중에 누구랑 노는 게 편해?”

“나는 둘 다 좋은데…”

생각해 보면 벤이 아닌 엄마가 변해서 다행이다. 어쩌면 엄마의 불안, 공포, 조바심에 ‘아이의 입장’ 따위는 고려치 않고 맹목적으로 치료실 메뚜기가 되었을지 모른다. 안전하게 제동을 걸어줄 수 있는 사회, 호주에 살고 있어서 되돌릴 수 없는 실수들을 줄일 수 있었다.

“난 엄마 맘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야!”

이곳 저곳 치료실에 가자면 발끈 화를 내며 본인의 주장을 피력하던 벤. 지금 보니 네가 엄마의 스승이다. 바꾸고 고쳐야 할 대상은 비자폐인의 세계만 옳다고 고집하던 엄마의 편협이었지, 애초에 벤에게는 치료할 대상이 없었다.

마침내 나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방치되었던 “희망”을 다시 만지작 거리는 사람이 되었다.

‘벤이 살아갈 미래는 지금과 얼마나 다른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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