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매거진 ADHD> 내 아이, 낯선 ADHD와 함께 살기

저자 송영화

우채윤 승인 2021.06.01 13:00 | 최종 수정 2021.06.01 13:09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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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송영화

ADHD 치료, 약만 먹으면 된다며?

ADHD의 치료에 있어서 약물의 불가피함이나 중요성은 개개인의 증상에 따라 보편적인 상식이 되어 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마치 아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 부모가 치료를 거부하거나 성실히 하지 않아서 일어나는 것으로 질타와 오해를 받기도 한다. 아직은 소수인, ADHD 치료를 수용한 부모들이 겪는 공통적인 호소이다.

물론 아이의 다름을 수용하지 못하는 부모가 많고, 전문가 개입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외면하는 부모 역시 존재한다. 그런데 증상이 심각한데도 부모가 약물치료나 전문가 개입을 주저하게 되는 것에는 우리나라의 정신과 질환에 대한 기본적 인식부족으로 인한 오해와 편견도 커다란 부분을 차지한다.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가고, 눈병에 걸려도 병원에 간다.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평생을 동반하며 관리해야 할 질환을 가진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런 질병들이 단순히 환자 본인의 의지가 부족하거나 식생활이나 운동 부족 등 자기 관리의 결핍에 의한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선천적인 요인에 의한, 본인이나 가족이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아무도 이런 질병을 가지고 있다 해서 환자나 그 가족을 비난하지 않으며, 환자도 이러한 질병을 가지고 있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아이가 이유를 알 수 없이 아프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중, 고등학교의 학업부담은 전세계의 전문가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이므로, 믿거나 말거나 새벽에 별보고 등교해서 밤에 별보고 하교했던, 나의 일상을 듣고는 미국 학생들은 지어내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었다. 고된 학업에 심리적인 부담감 때문이겠거니, ADHD 증상의 발현으로 인해 입은 부정적 피드백 탓이겠거니, 반복된 부정적 피드백에 상처입은 아이의 자존감을 올려주고자 너무 감싸고 키워서 아이가 나약해져서 그렇겠거니, 그런 생각도 했다. 나뿐만 아니라 그런 점을 지적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하지만 엄마의 직감이란 때로는 논리를 뛰어넘을 때가 있다. 뭔가 심상치 않았다. 자전거를 100kM씩 타고, 축구를 3-4시간씩 해도 끄덕없던 아이가 아프더니, 학교에 제대로 등교를 하지 못했다. 지난 가을 아이의 상태는 아이의 노력과 표면적인 행동이 개선되는 것과 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봄부터 새로 시도한 약물치료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었는데, 아이의 몸은 반대로 허물어져 갔다. 주치의와 상의 끝에 모든 약물 치료를 중단하고 신체 상태를 점검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불확실한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시작한 검사가 끝없는 검사로 이어졌다. 학교에서는 혹시 등교거부가 아닌가 하는 눈초리가 느껴진다.

마음이 아프지만, 아이보다 더 아파하는 마음을 보일 수는 없기에 주치의와 상의를 하고 오는 길에 차에서 한바탕 쏟아내며 울었다. 친구를 만나서 또 울고 나서야 마음이 가라앉았다. 마음이 아프지만 아이와 감정도 나누고, 설명도 해야하고, 안심도 시켜야 하고, 불안감도 달래주어야 하고, 또 학교 선생님께도 현재의 상황을 잘 이해 시켜야하고, 계속해야 할 병원 검사등 다른 일들도 처리해야 한다. 속이 상하다고 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엄마니까.

치료 중단 후 병원에서 받는 종이의 매수가 줄어들었다. 홀가분해진건 종이의 무게가 아니라 약물의 무게였다

진료비 상세내역 함께 다음 예약이 인쇄되는 종이 한 장과 약국용와 환자용 처방전 2장을 받았다. 그 종이 2장의 무게를 느낀 것은 아이의 신체 상태 점검을 위해서 약물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후였다. 진료비 상세 내역서는 의사와 상담만 해도 발행이 되는 것이라서 일시적 약 복용의 중단을 결정하고 나서 줄어든 것은 단지 종이 2장 뿐이었다. 각종 검사를 권유받은 터라 마음이 무거워지면서도 한편으론 줄어든 종이 2장이 그렇게 홀가분 할 수 가 없었다. 종이의 무게가 아니라 종이에 적혀진 약물의 무게였을 것이다.

항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되는 약물의 특성상 각종 ‘카더라’ 와 약물에 대한 부담감은 독하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약물복용을 일찍 결정하고 지속해온 나에게도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약을 먹이면 먹이는 대로 그 독한 약을 애한테 먹이는 독한 엄마가 되었고, 안 먹이면 안 먹이는대로 아이의 상태가 그런데 그것을 방치하는 무책임한 엄마가 되었다.

약을 먹이면 먹이는 대로 그 독한 약을 애한테 먹이는 독한 엄마가 되었고, 안 먹이면 안 먹이는대로 아이의 상태가 그런데 그것을 방치하는 무책임한 엄마가 되었다

아이와 부모를 생각한다며 주위에서 하는 말들은 때로는 비수가 되어 꽃혀왔고, 진단명에 대해 어느 정도 둔감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었다. 이런 속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또 이럴 때 마음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고 수용해 주는 것은 주치의와 자조모임의 엄마들이다. 친구들이나 주변인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해 다 배척하거나 이해를 하지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속속들이 이해하기는 힘들다. 때로는 강하게 버텨온 엄마들도 혼자서는 버겨울때가 있다.

엄마에게 모든 책임이 전가되는 악순환의 고리

ADHD는 과거에는 양육의 문제이거나 심지어 식이의 문제, 환경 오염의 문제 까지 다양한 원인론이 제기되었으나 현재에는 유전적인 선천적 요인이 후천적 요인에 비해 주된 요소임이 밝혀져 있다. 그러나 유전적인 요인이 주원인이라고 해서, 후천적 양육환경이 덜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적게 잡아도 2-3배 많게는 10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부모가 일찍 발견하고 조기 개입을 시작했다고 해서 ADHD 아동, 청소년을 양육하는 부모의 죄책감이나 부채의식을 덜기는 쉽지 않다. ADHD 진단 후 받는 위로는 이러한 마음을 덜어준다. 하지만 병원에서 주된 치료의 대상은 아이가 되고, 또 비용 문제로 엄마의 마음 위로나 교육, 치료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는 어렵다. 흔히 말하는 부인, 체념, 원망, 수용의 4단계를 거쳐서 극복되지만 긴 시간이 걸린다. 또 가정의 문제가 혼재되어 아이의 문제를 엄마 혼자 감당하는 경우나 엄마 역시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성인이 된 경우에는 더더욱 어렵다. 아이의 주양육자는 어머니인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아서 프랭클의 ‘아픈 몸을 살다’에서 언급되듯 당사자와 보호자의 극복의 과정은 전문가라고 해서 쉽게 도와줄 수 없는 고독한 과정이다. ‘우리 애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아요’라고 선을 긋고, 숙련된 전문가를 통해서만 내려질 수 있는 진단명이 비전문가들 입에서 오르내릴 때 부모들은 더 상처를 입고 아이를 더 감추고 부인하게 된다. 아이의 증상을 부인하고 감출수록 아이의 문제는 더더욱 내면으로 침잠하고 해결은 어려워진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아이들만 섬에 갇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보호자인 부모들조차 움츠러들고 가족 내에서 상처를 주고받는 악순환의 고리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보다 훨씬 더 개방적인 미국의 통계에서도, 정신적인 어려움을 가진 아이를 양육하는 가정에서 부모 모두가 공동의 양육이 이루어지기 보다는 주양육자 한 사람 (대부분은 엄마)에게 모든 책임이 전가되는 경우가 많고, 이혼율이 높은 것도 현실이다. 따라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이 아이의 부정적 행동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사회적으로도 형성되는 것이다.

함께 있어주는 것, 위로

모든 치료의 시작은 상태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아이의 상태에 대한 인정은 다름은 곧 틀림이라는 인식의 지배하에서는 쉽지 않다. 자조모임에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이렇게 심적으로 사회적으로 압박을 받고, 적절한 치료 방법을 찾을 때까지 일련의 좌절들을 겪는 동안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물론 전문적인 조언은 전문가의 몫이며, 주고 받는 말들이 모두 내 아이에게 도움이 되거나 맞는 것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몫인 위로는 당사자들끼리 더 잘 나누어지는 것 같다.

나 역시도 우연히 만나게된 이분들이 없었더라면 어땠을지 상상하면 아찔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아이에게 실망하고, 퇴행을 겪거나, 외부의 문제들로 어쩌지 못할 때, 너무도 혼란스러워서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할 때, 그래서 때로는 바보같은 행동을 하고 스스로 자책을 하고 있을 때 가장 큰 위로를 주는 것이 자조 모임이다. 때로는 ‘현자’(현명한 어머니)들의 질문으로, 때로는 이런 방법은 어떠냐는 말 한마디에서, 나도 그런 마음이 든적이 있다는 공감에서, 때로는 철딱서니 없어보이고 답답해 보이는 우리 아이의 모습을 장점으로 받아들여주는 응원에서, 아파하는 아이의 모습에 진심어린 걱정을 해주는 모습과 지쳐서 엄마조차 잊고 있었던 아이의 모습을 발견해주는 것으로 오늘을 또 견뎌나가게 해준다. 해결책을 마련해주지는 못하지만 하소연하고 싶은 만큼 하소연하고, 욕하고 싶을 만큼의 부정적 감정도 받아주며, 스스로 용기를 낼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다. 이해받는 만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 것도 자조 모임을 통해서이다.

많은 어려운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님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다. 더 이상 숨지 마시라고. 우리가 모든 것을 잘하고 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아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발달하고 있고, 우리는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화가나고 이런 감정들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그 길을 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아무도 가보지 못한 그 길을 가야한다. 그 길이 넓게 뚫린 탄탄대로가 아닐지라도, 우거진 숲속의 아주 작은 산길일지라도, 지도도 없는 막막함을 느낄지라도 오늘도 우리는 앞으로 나가고 있고 어쩌면 그 길은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이 나있지 않은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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