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피해자, 성미씨를 만났습니다

우채윤 승인 2020.11.01 15:27 | 최종 수정 2020.11.05 20:55 의견 0
Photo by Miguel Bruna on Unsplash


“아직도 기억이 나요. 아버지의 폭력에 못 이겨 엄마가 나를 두고 도망갈까봐, 엄마 손, 엄마 치맛자락을 항상 잡고 잤었어요.”

어머니가 떠난 후 집에 남겨진 김성미(26, 가명)씨는 6살부터 아버지에 의해 학대당했고, 고등학교에 입학해 가출한 뒤 친부와 인연을 끊었습니다. 이른 아침 인터뷰를 위해 만난 성미씨는 출산을 앞두고 있어, 많이 걸어야 한다고 했어요. 성미씨 옆에 나란히 서서,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함께 보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무작정 가출한 뒤 경찰의 도움으로 청소년쉼터에 입소했어요.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미용사로 취직도 했어요. 물론 좋은 부모 밑에서 사는 또래 친구들보다 힘들게 살긴 했지만, 저는 살아있고 행복합니다.

여덟 살 때 그 사람(아버지)이 나를 집어던져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무서워서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잠이 들었고, 일어나보니 손가락은 꺾여있고 오른팔이 움직이지 않았어요. 팔이 너무 아팠지만 아버지의 새 여자친구는 내가 식탁에 같이 앉는 것조차 싫어했기 때문에 아픈 팔을 다른 손으로 겨우 붙잡고 집을 나와 학교에 걸어가는데 쓰러졌어요. 깨어나보니 동네 문구점 아주머니가 저를 붙잡고 울고 계셨는데, 그 아주머니가 저를 여러 번 살리셨어요.”

학대받은 아이들은 대부분 심한 학대가 있어도 주변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합니다. 성미씨도 기억이 나는 어린 유아시절부터 폭력과 학대를 당했는데, 경찰이나 이웃들에게 ‘살려달라, 도와달라’고 말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부모였으니까요. 거기는 내 집이었어요. 나한테 밥을 주고 잠을 재워주는 곳. 집이요. 어릴 때는 집에서 나온다는 게, 부모에게 버려진다는 게 내가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에요.”

아동학대를 하는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이 배고파서 울었다고, 떼 썼다고, 집에서 뛰었다고, 거짓말했다고 ‘너가 혼날만 해서, 너가 맞을만 해서 맞는 것’이라 말하며 때립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당연한 욕구이며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의 한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죽도록 맞을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항상 아버지 눈치를 보고, 내가 더 잘하면 안 맞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사랑받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폭력은 점점 더 심해졌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코뼈가 부러져 학교에 가니 선생님이 눈치채시고 아버지와 면담을 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어요. 그때뿐이었고, 더 맞았던 것 같아요.

저를 살린 건 법도, 경찰도, 학교도 아니었어요. 동네 문구점 아주머니, 그분이 저를 살렸어요. 항상 저만 보면 말씀하셨어요. 그 집을 나와야 제가 산다고. 그리고 제가 가출했을 때 저를 돌봐주시고 가르쳐주신 여자청소년 쉼터 선생님들이요. 공부도 할 수 있게 해주셨고 우선 취업을 해야 하니 쉼터에 있을 때 적성에 맞는 자격증을 따야 한다며 제 진로를 위해 같이 고민해주셨어요. 그리고 정확히 말씀해 주셨어요.”

“부모가 너를 학대한 것은 네 잘못이 아니다. 네 부모의 잘못이다. 피를 나눈 가족이라고 얽혀 살 필요는 없다” 이렇게 말이죠.

"혹시 성미씨는 본인이 좀 더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서 분리가 되었다면 더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 있어요?"

“제가 친구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게 아홉 살 즈음이었어요. 친구집에 놀러갔는데 친구 어머니가 따뜻한 밥을 해주시고, 아버지에게 맞은 적도 없다는 친구의 얘기에 놀라웠어요. 제가 스스로 불쌍하다고 느껴졌는데, 그 이후로는 항상 이 집에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과 어떻게 하면 아버지에게 맞지 않고 집에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그런 집에서 살아서도 안 되고 죽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아홉 살인 당시의 저는 어떻게든 안 맞고 집에서 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전문가들은 학대 피해 아동과 가해자인 부모와의 분리는 아이의 심리상태를 충분히 고려해 결정되어야 할 문제이지만, 아이 스스로가 분리를 원하거나 요구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에 공공연히 아이들이 차라리 죽기 직전까지 맞고 발견되는 게 부모와의 분리가 쉽다고 말합니다. 애매하게 조금 다치면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 학대를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아동학대를 사유로 보호자와 아이가 분리보호조치가 시행되더라도 아이들이 갈 수 있는 쉼터가 턱없이 부족한 것도 문제입니다.

아동학대 피해 아동은 연 2만4604건(2018년 기준)으로 그중 분리 조치된 아동의 수는 4440명(2018년 기준)인데, 현재 전국의 학대 피해 아동 보호쉼터는 서울·부산·대전 각 4곳, 경기 13곳 총 72곳 뿐입니다. 아동학대 피해 아동 보호쉼터 한 곳당 학대 피해 아동은 7명까지 머물 수 있어 분리보호조치된 아동학대 피해 아동들이 머물기에는 매우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제는 정말, 학대 피해 아동이 안전하게 분리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안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김남욱과장(푸르메재단 어린이재활병원)은 하나의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아동과 부모를 분리하는 게 쉽지가 않아요.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초등학생까지는 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일단 아동보호센터에 정기적으로 출석하게 해서 부모와 분리된 상태에서 아이의 말을 들어야 해요. 부모가 있으면 아이들은 솔직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평가자와 라포(신뢰)가 형성돼 속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을 때까지 강제적으로 시행하면 어떨까 싶어요. 경험상 아동학대는 반복적으로 이뤄집니다.

아이들이라면 당연한 욕구들, 배고프다, 시끄럽다는 이유로 학대를 당해요. 그런데 이런 학대를 계속 당하면 ‘내가 잘했으면 안 때렸을텐데’, ‘내가 나빠서 맞은거야’라 믿게 되고 착한 아이가 돼서 부모의 사랑을 되찾고 싶어하게 되죠. 그 사랑을 되찾으려면 부모가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죽을 때까지 맞아도 부모를 못 떠나요. 아이들도 부모의 사랑을 받으려고 여러 방법들을 다 써봤을 거에요. 그런데도 학대가 계속 반복되면 나는 맞을 수밖에 없는 아이구나 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만약 성미씨가 여덟 살 학대 당하던 그때, 학대 사실이 인지가 되었다면, 다시는 맞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아동보호기관과 학교, 경찰의 시야에서 벗어나 집 안에서 은밀히 다시 폭력이 일어나면 누가 막을 수 있을까요. 

제도만으로 아동학대를 막는 것은 어쩌면 힘든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사회적 약자, 아이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사랑이 존재합니다. 제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두려운 집을 벗어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아이들에게 성미씨의 ‘문구점 아주머니’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성미씨, 이제 곧 엄마가 될텐데, 어떤 엄마가 되고 싶어요?”

“아이가 놀이터에서 정신없이 친구들이랑 깔깔대며 뛰어놀다 뒤돌아보면 그 자리에 서서 따뜻하게 웃어주는 엄마요. 그리고 식탁에서 같이 맛있게 밥 먹는 엄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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