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매거진, 호주 교육 연재 세 번째> 교육의 경계가 허물어지려면

저자 이루나

우채윤 승인 2021.02.20 21:30 | 최종 수정 2021.02.20 21:29 의견 0

Photo by Ryan McGuire, Pixabay


저자 이루나

두근두근, 심장이 콩닥거렸다. 아들 벤이 초등학교 1학년때 하교 시간, 동 학년 옆 반 잭이 엄마를 보자마자 득달같이 달려와 불만을 토로했다.

“난 폴린이 싫어. 같은 반인 것도 싫어!”

폴린은 발달이 다르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나는 아이였는데, 아마 초등 저학년인 또래들도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나 보다.

오지(Aussie, 호주인을 일컫는 말, 보통 한국 이민자가 ‘오지’라고 말할 때는 오래전에 호주로 이민 온 백인이며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을 일컬음)인 잭의 엄마는 뭐라고 답할까, 궁금해서 귀를 바짝 집중했다. 잭이 토해내는 불만과 짜증보다 엄마의 응답이 더 궁금했다. 호주도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고, 처음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을 보면 거침없는 질문이나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은 한국이나 다르지 않다.

벤의 진단을 앞 둔 시점이기도 했고,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발달장애를 지닌 벤의 진단 사실을 추후에 누구에게 어느 정도까지 공개할 것인가를 가늠하기에 좋은 순간이었다.

“아무도 너에게 폴린을 좋아하라고 강요하지 않아. 네가 너의 학교 생활을 하듯이 폴린도 폴린의 학교 생활을 할 권리가 있어. 그러니까 너처럼 폴린이 학교 생활을 하도록 그 아이를 존중해 주면 돼. 그리고 분명한 건 너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을 수 있다는 거야.”

“아무도 너에게 폴린을 좋아하라고 강요하지 않아. 네가 너의 학교 생활을 하듯이 폴린도 폴린의 학교 생활을 할 권리가 있어. 그러니까 너처럼 폴린이 학교 생활을 하도록 그 아이를 존중해 주면 돼. 그리고 분명한 건 너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을 수 있다는 거야.”

‘세상에나, 이건 너무 멋지잖아!’

잭의 엄마에게 사로 잡힌 눈길이 한동안 머물렀다. 홀랑 마음을 뺏겼다.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아이의 감정을 인정하면서도, 그 사실이 상대의 권리를 박탈할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잭 또한 누군가에게 불편한 존재일 수 있다는 입장의 전환까지 가르치는 엄마라니!

‘혹시나 내 아이가 장애아동 때문에 손해를 보지 않을까?’, ‘특수학교가 설립되면 집값이 하락하는 것은 아닐까?’, ‘왜 특수학급 아이들이 일반 학급에 오려고 하는가?’ 한 사람의 존재 자체를 손익계산서 맞추듯 재고 따지는 일들, 내 아이가 그 손익계산서에서의 변수가 되는 것이 두려워서 호주로 이민을 와 놓고도 엄마는 놀란다. 눈앞에서 목도하고 경험하면서도 현실감이 떨어질 때가 종종 있다. 어쩔 수 없이 나의 이민 생활은 ‘조용한 관찰자’, ‘질문하는 자’로 자리매김을 했다. 도대체 두 나라간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호주에도 특수학교가 있다. 아니 많다.

구글 맵을 검색해 보면, 내가 사는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 안에 대여섯 개가 넘는 공립 특수학교가 존재한다. 신체적/의료적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을 위한 학교, 마일드 한 지적장애나 자폐를 지닌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 중증의 자폐 학생들이 주로 가는 학교, 심한 지적장애 학생들이 주로 가는 학교 등, 장애의 종류와 정도가 다양한 아이들이 존재하는 만큼 다양한 학교들이 존재한다.

물론 일반 학교도 다양하다. 크게 공립-준사립(주로 카톨릭학교)-사립학교로 나뉘는데 장애가 심한 학생이어도 부모가 통합교육을 원하면 일반학교에 보내면 된다. 장애의 유형과 정도, 가정의 여건과 환경에 따라 부모가 선택을 한다. 다양한 선택지 안에서 부모가 최선의 선택을 하면 되고 정부, 교육부, 학교와 지역 사회는 그들의 선택에 맞춰 지원하는 방향으로 돌아간다.

분명한 것은 호주에서도 한때는 한국같은 시스템을 운영했었다는 점이다.

한국처럼 일반 학교 안에 특수학급과 특수교사를 배치하는 시스템, 호주처럼 장애 아동을 일반교실에서 분리해 빼낼 여지 자체를 두지 않는 시스템. 두 제도 모두 장단점은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호주에서도 한때는 한국같은 시스템을 운영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은 깨달았다. 장애 아동을 교실에서 빼내 특수학급에 머물게 하는 방법은 원래 통합교육이 지향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는 사실과 장애 아동뿐만 아니라 비장애 아동에게도 함께 어울려 사는 법을 가르칠 수 없다는 점, 그래서 부모가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를 선택했다면 모든 예산과 정책과 지원은 한 교실에서 어우러지는 교육이 가능하도록 방향을 세우고 관련된 현장의 사람들을 지원해서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들을 말이다.

그렇다 보니 호주의 초등 교실은 발달이 다른 아동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문턱이 아주 낮고 상시로 오픈이 된다.

아동을 지원할 다양한 사람들을 교실 안으로 투입하는 방법이다. 부모 자원 봉사팀을 가동시키고, 보조교사 자격증을 지닌 사람들의 봉사활동을 환영하고(실무위주의 현장 경험을 중시하는 호주에서 추후 보조교사로 채용되려면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해당 아동이 직접 만나고 있는 전문가들(감각통합사, 심리 상담사, 언어 재활사)이 교실을 방문해서 일반 교사의 통합교육의 이해와 질을 끌어 올리고, 부모가 원하면 해당 장애에 대해 일반 아이들의 이해와 인식 교육을 직접 실시하기도 한다.

호주 초등 교실에는 교사가 둘이 팀으로 배치되는 풍경이 흔하다.

학급을 총괄하고 책임지는 일반교사와 특별(special)한 도움이나 부가적(additional)인 도움이 필요해서 통합교육에 어려움을 겪는 아동들을 지원하는 보조교사의 조합이다. 특히 장애 아동의 부모들이 선호하는 학교일 수록 많은 보조교사가 투입되고, 정부에서도 역량 있는 보조 교사 양성과정과 현장 배치에 대한 예산 증액을 약속하고 있다.

통합 교육의 꽃은 보조교사

호주의 보조교사는 한국의 특수실무사 제도와 유사하지만 양성과정과 교실에서 기대되는 역할에는 차이가 있다. 호주 보조교사 양성과정은 한 달간의 교생실습을 포함한 약 일년의 교육과정을 거쳐야 하고, 일반 학급 안에서 보통 두 세명의 아동을 맡아서 지원을 한다. 예를 들면, 아동의 수준에 맞게 학습자료를 재구성하고, 시각적 학습자를 위해 시각자료를 만들고, 영어 사용이 자유롭지 않은 아동을 보살피고, 화장실 사용이 어려운 아동을 돌보고, 섭식에 어려움이 있는 아동을 지원하고, meltdown(정서적 소진) 이 온 아동의 정서적 안정을 돌보고, 그룹 활동에 쉽게 참여하지 못하는 아동에게 참여를 돕는 등의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보조교사들은 진단을 받은 아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진단을 받지 못했으나 학업이나 단체 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을 함께 보조를 하면서 동시에 비장애 아동들의 학습권도 침해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래서 호주 일반 학교에서 ‘통합 교육의 꽃은 보조교사’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일반교사, 장애 분야의 최전선에 선다

이런 구조 안에서 자연스럽게 호주의 많은 일반 교사들은 장애 분야의 최전선에 서게 된다. 벤 학교의 담임 교사들이 “People with disabilities(장애를 지닌 사람들)”이란 탐구학습 주제로 9주 동안 주 3회씩 직접 수업을 이끌어 가는 놀라운 일이 벌어질 수 있는 데는 나름의 이유들이 있었다. 당사자 아동들과 일상적으로 접하고, 현장의 전문가들과 당사자 부모들과 가장 최근의 장애계의 정보와 흐름을 수시로 주고 받으며 서로 성장하고 발전하니 어쩌면 당연한 이치다. 그렇다 보니, 호주의 일반 교실에는 특수교육과 일반교육의 경계가 희미하다.

‘이곳의 비장애 아동의 엄마들은 어떻게 장애 아동들의 완전 통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을까?’, ‘호주의 일반 교사들은 특수교사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 겁없이 장애 아동들을 한 교실에서 교육할 생각을 했을까?’

한국에서 ‘전직교사’였던 엄마에게 호주 교실의 속살을 이해하기 전에는 도저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었다. 그런데 장애 당사자 엄마로서 학교 현장을 몇 년 경험하고 보조교사 자격증 과정을 공부하고 난 지금은 말할 수 있다. 이들이 선천적으로 선하고 관대한 것이 아니라, 통합교육을 위해 제도 자체가 분리를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통합 교육의 책임을 온전히 일반 교사의 몫으로만 돌리지 않도록 교사의 입장을 듣고 지원을 확대해 가고 있고, 그 과정에서 비장애 아동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들을 함께 모색했기에 가능했다는 점이다.

어느 한 집단의 과도한 희생이나 노력이 아닌 서로의 곁을 조금씩 나눠 모두가 어울려 살수 있게 작동하는 사회에 살다 보면, 잭의 엄마처럼 말하는 이웃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빼앗는 것을 나의 권리라고 부를 순 없잖아.”

저작권자 ⓒ발달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