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매거진 ADHD> 자조모임의 힘, 나는 참호전의 병사처럼 지쳐가고 있었다

저자 송영화

우채윤 승인 2021.03.28 09:43 | 최종 수정 2021.03.28 20:06 의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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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송영화

나는 참호전의 병사처럼 지쳐가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치료를 받아온 아이의 초등생활은 생각보다 안정적이었다. 아이의 다름이 드러나지 않기를 원했던, 어쩌면 다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이제는 이 아이에게서 조금은 벗어나고 싶었다. 경력 단절 10여 년만에 다시 직장을 구하고 아이에게 당당한 엄마가 되기위해서 라고 마음을 포장하였다. 실제로 그 무렵의 나는 매우 지쳐있었으나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아이를 위해서 최선의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듯 하다. '내가 아니면 이 아이를 누가 이해하고, 돌볼 수 있겠는가' 라는 생각에 매몰되어,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사그러들길 반복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스스로를 돌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엄마'가 '나'를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않았다.

아이가 중학교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불안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전문가 그룹의 세미나에도 참석하여 새로운 정보들을 얻고, 치료의 방향도 전환해야 겠다 결심도 했고, 전문가 그룹에 초대받아 가서도 말 한마디에 화가 나고 상처를 받기도 했다. 불안은 전이된다더니, 나 역시 의지만으로 불안을 극복하고 힘을 얻기에는 무언가 충분하지 않았다. 세미나 장소에서 다른 장애 어머니들의 모임을 보았는데, 그 분들은 끈끈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넷플릭스에서 본 ‘별나도 괜찮아’가 생각이 났다. 나는 참호전의 병사처럼 지치고 무력해져 가고 있는데, 세미나 장소에서 본 어머니들과 ‘별나도 괜찮아’의 엄마는 무엇이 다른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인가, 나약해서인가, 내가 잘못한 것이 없었나' 자책과 후회와 불안으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나름 열심히 ADHD자조 모임을 찾아보았고 만들어보기위해 노력도 해보았지만 자조모임으로 자리를 잡지는 못했다. 아마도 자조모임을 이끌기에는 나 자신조차 추스릴 수 없는 상황에서 타인을 품을 수 있는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몇몇의 소중한 인연을 얻었으니, 아주 망한 일은 아니었다 믿는다.

깊은 숲속에서 길을 잃은 것 같다. 길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은 것 같은데, 그 길이 보이지 않고,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친구들에게 나의 상황을 털어놓기도 했지만, 순간의 목마름을 달랠뿐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느순간 매일 징징대는 것처럼 보여 그것마저도 불편해져 갔다.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으면 절대 이해하지 못할 그 무엇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학교 배정 무렵부터 표면화된 가정의 불화로,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고 느낀 아이는 매우 불안해 했으며, 그 불안은 과격한 행동으로 표현되었다. 학교에 아이의 어려움도 이야기하고, 치료도 지속적으로 받았지만 조금 나아졌나 싶으면, 다음 해에 또 학기 초마다 문제가 생기길 반복했다.

이제는 괜찮으려니, 아니 괜찮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아이는, 중학교 마지막 학년에 아이가 목숨처럼 여기는 물건이 학교 안 여러 동급생에 의해 고장이 났고, 다름을 이유로 그동안 당한 억울함이 쌓였는지 아이는 진정이 되지 않았다. 더이상 아이 혼자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 나는 심리적 외상을 예견하면서도 그 문제에 뛰어 들었다. 어렵고, 외롭게 해결하던 무렵이었을 것이다.

우연히 검색을 하던 중에 비슷한 또래의 ADHD 아이들을 가진 모임의 대화방을 알게 되었다. 그분들과 한 번의 만남의 자리를 가지게 되었지만, 나는 또 마음을 열지 못했다. 뭔가 문제를 해결한 분이 제시한 이야기는 솔깃했지만, 최악의 결론이 날까봐 두렵기도 했고, 솔직히 나는 왜 그렇게 해결하지 못했는가 자격지심도 들었다. 모임에서 여전히 속내를 털어놓지는 못했고, 현재의 상황을 정확히 볼 용기는 없었지만, 직면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은 나를 깊은 우울에 빠지게 했다.

대화방에 “깊은 숲속에서 길을 잃은 것 같다. 길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은 것 같은데, 그 길이 보이지 않고,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라는 글을 남기고 소위 말하는 잠수를 탔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아이들을 돌볼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간신히 남아 있는 에너지를 마른 수건에서 한 방울의 물을 짜내듯이, 그저 아이의 병원 예약을 지킬 뿐이었다. 인생 처음으로 스스로 삶에 대한 의지가 흔들렸다.

돌이 안된 아이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가장 친했던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며 간신히 병원에 갈 수 있었다. 나도 치료를 받기로 했다. 이렇게 삶을 지속하기에는 너무도 괴로웠다. 약을 먹으니 불면은 깊은 잠으로 바뀌었다. 정신없이 잠을 자면서도, 약의 도움으로 아이들에게 엄마의 상황을 알릴 수 있었다.

새로운 시작은 아픔을 드러내는 것부터였다.

그 무렵일 것이다. 대화방에서 많이 힘들어 보이시던데 잘 지내시는지 모르겠다며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동안 애써 씩씩한척 했던,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죽기보다 더 싫어하던 나였는데, 그 안부의 말들이 나를 건져 올렸다. 나의 마음을 조금 더 솔직하게 열어보여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시작은 아픔을 드러내는 것부터였다.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와 조금씩 상황을 정리하고, 아이를 관찰하고, 아이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나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고,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또 코로나의 시기에도 견딜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힘이 생기니 다른 사람들을 돌볼 여유가 생겼고 서로 얼굴을 보지 못했더라도 어려움이 있을 때 공감할 수 있었다.

그것은 ADHD가 정말 다양한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우리 애는 저 정도로 심각하지 않아라고 말하며, 같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음에도, 어려움과 고민을 같이 나누지 못하는지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다름은 사람 사이에서도, 상황 사이에서도, 시기상으로도,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것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오늘의 어려움을 한숨이 아닌 깊은 심호흡으로 견뎌낸다

오늘도 익명의 대화방에서는 학교 등교는 잘 했는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 어떤게 제일 걱정되는지, 스마트폰에 과몰입된 아이들은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아픈 곳은 없는지,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같이 걱정하고, 속 썩일땐 원수 같지만 대개는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속상해하고, 같이 화내며, 공감과 위로와 관심을 나눈다.

화는 대화방에서 풀고, 안 하는게 아니라 못 하는 아이를 어떻게 이끌지 고민을 나눈다. 이 방의 자매들에게 서로 용기를 잃지 말라며, 힘이 들면 우리가 옆에 있을거라고 말하며, 오늘의 어려움을 한숨이 아닌 깊은 심호흡으로 견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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