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매거진, 호주 교육 연재 다섯번째> 자폐(스펙트럼) 아동이 넘어야 할 것은 자폐가 아니라 세상이다(1부)

저자 이루나

우채윤 승인 2021.06.28 10:46 | 최종 수정 2021.06.28 11:14 의견 0

저자 이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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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by Hans Braxmeier from Pixabay


“Most autistic people don’t actually suffer from our autism. We suffer from the way the world sees and treats our autism.”, Tashi Baiguerra.

"대부분의 자폐인들은 우리의 자폐 때문에 고통받지 않는다. 세상이 우리의 자폐를 바라보고 대하는 방식 때문에 고통받는다."

아무리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낮은 사람일지라도 계단 앞에서 멈춘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만났을 때, 최소한 이런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여, 일어나 걸으라!”

호주에 살아보니 비교적 쉽게 눈에 드러나는 장애를 지닌 사람들에게 장애 특성에 맞는 ‘합리적(reasonable)’이고 ‘필수적인(necessary)’인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를 이룬 듯하다. 단지 이제는 얼마나 더 세심하고 치밀하게 사회 곳곳의 환경을 조정(adjustment)하느냐가 관건인 듯이 보인다.

잘 드러나지 않아서 고통받는 발달장애인

반면에 수많은 발달 장애인들은 해당 장애가 지닌 특별한 요구들(special needs)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들에게 필수적인 아주 기본적인 편의제공들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이해가 낮으면 낮을수록 이들에게 필요한 ‘합리적·필수적 편의 제공’은 요원하고 이들의 생존과 직결된 욕구는 개인의 선호(preference) 쯤으로 치부되어 그들을 차별하고 혐오를 재생산하는 근거가 된다.

자폐인이 세상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감각은 다르다. 모든 자폐인들이 똑같은 자극에 똑같은 강도로 반응한다는 것이 아니라, 청각·시각·후각·촉각·미각이 자극을 받아들이는 방법과 강도가 비자폐인과는 다르다는 뜻이다.

예로 촉각이 예민한 벤은 아주 작은 상처에도 극도의 통증을 느끼지만, 어떤 자폐 아동은 팔이 부러졌는데도 통증을 잘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자폐인의 감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벤이 실제로 느끼는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치 꾀병을 부리는 아이로 오해하곤 한다.

“사내 놈이 엄살 좀 작작 부려라.”

자폐인 중에는 벤처럼 특정한 촉감과 유형의 옷을 잘 입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인 당사자들의 표현에 의하면 특정한 옷들은 마치 몸에 수십 마리의 개미가 달라 붙어있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편안한 옷을 찾다 보니 선택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고 증언하는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비난하곤 한다.

“어지간히 유별나게 구네.”

이처럼 비자폐인에게는 ‘취향의 문제’고 ‘선택의 문제’로 보이는 상황이 자폐인에게는 ‘생존의 문제’임이 분명한 경우가 다반사인데도 그들에게 필요한 지원 대신 당사자를 비난하고 혐오의 대상으로 쉽게 전락시키곤 한다.

자폐는 취사 선택할 수 있는 악세사리가 아니다

황인종인 나의 노란 피부를 모자처럼 필요에 따라 '썼다 벗었다' 할 수 없듯이, 뇌가 비자폐인과는 다르게 작동하는 자폐인들의 자폐적 특성들 또한 '썼다 벗었다'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다. 자폐인들이 보이는 모든 말, 몸짓, 눈빛, 의사 소통 방식, 감각의 다름, 상동 행동, 반향어, 제한적인 관심/흥미, 반복적인 루틴을 좋아하는 일 등, 소위 비자폐인의 눈에 ‘이상하게(weird/strange/nerd/geek)’ 보이는 모든 모습들은 이들이 세상을 느끼고 세상과 접속하고 소통하는 그들의 고유한 방식이고 정체성이다.

역으로 말하면, 위에 열거한 특성들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자폐 아동들이 학교 생활에서 이해 받고, 존중 받고, 지원(support)받고, 보조(assist) 받아야 할 영역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특별한 욕구는 잘 ‘보이지 않거나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더 정확히는 사회 구성원들이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일상적으로 삭제를 당한다.

자폐 아동에게는 도전적인 상황과 환경이 있을 뿐이다

자폐인 아들과 살아가다 보면 세상은 유독 자폐 아동들에게는 더 야박하고 매정하고 매몰차다. 가령, 휠체어가 필요한 아동에게 휠체어가 제공되지 않아 목발에 의지해서 걷다 비장애 아동과 부딪혀 둘 다 부상을 당했다면 사회 구성원들의 반응은 어떨까? 최소한 해당 장애 아동을 “문제적·도전적·반항적 행동을 하는 아이”라고 낙인을 찍지도 않을 뿐더러 당장 휠체어를 제공하라 목소리를 높일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반면에 자폐 아동들에게는 너무나 시급하고 다급한 편의를 제공해주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면서도 이들에게 수시로 “도전적인 행동을 하는 아이”라는 오명을 붙인다. 전직 교사로서 한국의 일반 학교에서 오래 근무한 경험과 호주에 와서 아들이 다니는 일반 학교를 경험하고 보조교사 과정을 공부하면서 호주의 특수학교를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학교는 비자폐 친화적이다.

만약 학교를 디자인 할 때 자폐 당사자가 직접 참여해서 학교를 자폐 친화적(Autism Friendly)인 환경으로 바꾸고, 교육과정을 디자인할 때 자폐 당사자가 직접 참여해서 일반 교육과정에 자폐 친화적 교육과정을 통합시키고, 일반 교사와 자폐 당사자 보조교사가 팀으로 수업을 한다면 어떨까?

물론 자폐 당사자 교사와 일반 보조 교사의 통합도 좋다. 이런 발칙한 상상을 하고 있자면 아이디어들이 팝콘처럼 터진다.

자폐 아동들이 지닌 감각의 어려움에 대한 지원, 교실의 불빛을 부드럽게 바꾸기, 아동들이 이동시 서로 부딪히는 경우 수가 적게 건물을 개조, 교사들이 자폐 아동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에 맞는 수업 내용을 함께 제공, 단순하게 도식화된 수업 자료들의 활용, 자폐 아동들의 흥미와 관심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수업 내용을 전개, 자폐 아동들이 이해하기 쉬운 명시적인 표현 사용, 이들의 뇌가 과부하에 걸리지 않도록 중간중간 휴식을 제공, 활동을 전환할 때 충분한 안내 등 말이다.

자폐인 아들과 사는 엄마의 삶 또한 도전으로 차고 넘치고

자폐인으로 살아갈 아들의 인생도 역경이 많겠지만, 동시에 엄마의 인생 여정도 만만치는 않다. 비자폐인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수시로 점검하며 사방팔방 열심을 다하지만 순간순간 둑이 무너져 쏟아지는 물에 익사할 듯한 기분이 든다. 나 혼자 만의 노력으로 감당할 수 없다는 두려움, 애간장이 녹아내린다는 말로는 담아내지 못할 슬픔이 엄습할 때는 차라리 주저앉아 울고 싶다. 예를 들면 바로 이런 순간.

“엄마, 나 자폐인 친구들이 많은 학교에 다니면 안돼? 아론이랑 찰리가 자꾸 놀리고 무시해.”

아론이랑 챨리는 4학년 남학생 중에 가장 힘이 좋고 눈치 빠르고 운동을 잘하고 거친 순위로 서열이 1,2위인 아이들인데 둘이 한 학급에 붙었으니 불에 기름을 부어 놓은 형국이다. 토니 애트우드(Tony Attwood) 박사의 말처럼, ‘거의 모든 자폐 아동들의 운명’ 이라는 ‘신체적·언어적 학교 폭력’에 벤 또한 너무 쉬운 먹잇감이 되었고, 슬픔은 오롯이 당사자와 가족의 몫으로 돌아온다.

자식에게 발달장애인이란 낙인을 주고 싶은 부모는 단 한 명도 없다

벤을 처음 만나는 사람이 벤의 “자폐성 장애”를 인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장담한다. 자폐성 장애가 얼마나 광범위한 스펙트럼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벤처럼 말도 제법 잘하고 공부도 특별히 뒤쳐지지 않고 운동도 나름 잘하고 학교에서 몇명의 친구들과 신나게 노는 아이도 자폐인 일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벤의 “장애”는 보이지 않는다. 반신반의하겠지만, 벤이 자폐인이란 사실을 모르는 엄마들은 심지어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벤은 영어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친구들하고도 잘 노니 얼마나 좋아요?”

벤의 웃음 뒤에 감추어진 깊은 좌절과 스트레스와 우울과 불안을 읽어내는 일은 흔히 자폐 아동들에게 쉽게 낙인 찍는 “문제적·공격적·반항적 행동” 뒤에 숨겨진 자폐 아동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 만큼이나 난해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아들에게 “장애인”이란 공식적인 낙인을 줬다. 내 아이에게 필요한 지원 요구를 ‘사적인 일(personal matter)’을 애걸하는 방식이 아닌, ‘합리적이고 필수적인 일(reasonable necessary matter)’로 공표하여 공식적인 테이블 위에 올리고 공식적으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겠다는 선언이다.

마음만큼이나 칠흑같이 고독한 밤, 복기를 시작한다. 내가 끌어들일 수 있는 자원과 나를 지원할 사람들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호주의 특수교육법을 읽으며 내가 등판할 운동장에 몇 겹의 안전장치들이 둘러져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그리고 가장 먼저 자폐 당사자인 친구에게 구조 신호를 보낸다.

“엘리, 너무 속상해. 나는 벤이 자폐인이란 사실이 문제없는데 세상은 자꾸 벤을 밀어내.”

<자폐 아동이 넘어야 할 것은 자폐가 아니라 세상이다>2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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