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매거진 호주 교육 연재, 여섯번째> 벤의 학교에는 벤과 같은 뉴로(Neurodivergent) 부족의 교사가 있다(2부)

우채윤 승인 2021.08.26 23:02 의견 0
photo by Walkerssk, from Pixabay


Walkerssk“Diversity is strength. Difference is a teacher”, Hannah Gadsby.

"다양성은 강점이다. 차이가 선생이다.", 한나 개츠비

나와 나의 아이들은 모두 자폐인입니다

한 달 전, 벤의 일학년 때 담임이었던 스미쓰 선생님은 학교 소식지에 깜짝 공개를 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뇌신경이 다양한 사람들(Neurodivergent, 정형인과는 뇌가 다르게 작동하는 사람들로 자폐인, ADHD인, 난독증인 등)을 이해하도록 돕는 일, 사회가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수용(accepting)하고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욕구에 맞게 환경을 조정(accommodating)하는 일에 열정적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벤의 학교에는 벤과 같은 뉴로(Neurodivergent) 부족의 교사가 있다

비자폐인 교사들과 비자폐인 아이들이 대부분인 일반 학교에서 교사가 자폐인임을 공개하는 일은 나같은 자폐 아동을 키우는 부모나 자폐 당사자 아동에게는 천군만마를 얻는 일이다. 통합교육은 옆자리에 앉은 장애 아동과 비장애 교사들의 ‘장애 인식과 이해 교육’을 통해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자폐인 교사에게 교육을 받은 자폐 당사자나 비자폐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자폐(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과 선입견을 덜 갖고 자라날 확률이 높다. 호주에서 진단받은 교사들이 공개적으로 자폐인임을 드러내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는데, 교사들이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를 스미스 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자폐 아동과 부모들, 그리고 비자폐인 구성원들에게 학교나 주변의 성인 중에도 자폐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일은 중요해요.”

벤이 학교에서 겪는 어려움을 가장 잘 이해할 사람, 호주 학교 내부 사정에 능통한 사람, 자폐 아동을 키우는 부모의 심정을 고스란히 이해할 사람인 스미스 교사에게 벤의 어려움을 알리고 현실적인 조언들을 안내 받았다.

이제는 비자폐인이 자폐인의 노력에 응답할 시간

벤은 일학년 때 스미스 교사의 도움으로 진단을 받고도 학교측에 공식적인 SSG(Student Support Group, 특수교육 대상 아동의 전반적인 학교 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공식적인 모임과 회의)를 요청하지 않았다. 왜냐면 매년 교장 선생님이 담임 배치나 학급 편성에서 장애 아동의 부모에게 우선권을 주어 의견을 경청하고 반영을 해 주었고, 담임 교사와의 즉각적인 열린 소통과 협업으로 학교 생활을 나름 잘 해오고 있어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이제는 더 미룰 수 없는 일이다. 벤이 성장하면서 본인의 ‘다름’을 선명하게 인식하기 시작하고, 또래 관계도 복잡해지고, 학업의 난이도도 어려워지니 이제는 벤을 지원하는 방식이 더 정교해지고 섬세해져야 한다. 마침내 장애 아동관련 업무를 책임지는 교감과 마주 앉았다.

“저에게 벤이 자폐인이란 사실은 문제없지만, 벤이 비자폐 아동과 달라서 놀림을 당한다는 사실은 전혀 괜찮지가 않아요.”

‘비자폐인과 어울려 사는 법’ 을 배우고 가르치기 위해 세상의 거의 모든 자폐 아동과 부모들은 온 에너지와 열정을 쏟아 붓는다

‘비자폐인과 어울려 사는 법’ 을 배우고 가르치기 위해 세상의 거의 모든 자폐 아동과 부모들은 온 에너지와 열정을 쏟아 붓는다. 벤은 학교에서 본인과는 너무 다른 비자폐인 아동들의 문화와 특성을 이해하고자 하루 종일 뇌를 풀 가동해야 하고, 언어 재활사, 심리상담사, 감각통합사를 만나 본인의 감각과 감정과 언어와 소통 방식이 비자폐인들의 방법과 어떻게 다른지를 공부한다. 정기적으로 소아과 전문의를 만나 ADHD로 야기되는 행동적인 어려움이 있는지를 점검하고 약물 지원이 필요한지를 의논한다. 건강한 인간 관계란 쌍방향임을 믿는 사람, 자폐인도 마땅히 동등한 시민이라 여기는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벤과 저는 이미 너무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 비자폐 아동들에게 다양한 사람들과 건강하게 어울려 살도록 더 좋은 교육을 시켜 주세요.”

자폐 아동들은 친구관계를 동냥하는 아이들이 아니다

자폐인이란 사실을 자부심을 실어 이해시키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벤은 서서히 본인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학교에서 본인과 같은 (진단/비진단) 뉴로 부족의 친구들을 감별해 내는 안목이 생기고, 더불어 본인의 학교 생활이 어떻게 도전적인지를 감지하고 이를 설명하는 언어들을 장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벤은 이렇게 질문한다.

“왜 아론이랑 찰리는 어떤 때는 나에게 친절하고 어떤 때는 나를 거부하는지 모르겠어.”

인간의 모든 관계는 ‘권력(power)의 관계’고, 자폐 아동은 비자폐 아동과의 관계에서 십중팔구는 취약한 처지로 전락해서 동등한 힘의 관계를 쟁취하기 어렵다. 안타깝게도 수많은 자폐인들은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흔하게 가스라이팅(gaslighting, 심리적 조작을 통해 타인의 마음에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불러 일으키고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듦으로써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 을 당하고 성인이 되어서 여러가지 정신건강 문제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내 아들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한 사람으로 서기를 바라니 교감에게 분명하게 입장을 설명했다.

저는 벤에게 혼란스런 메세지를 주는 친구관계를 원하지 않아요

“저는 벤에게 혼란스런 메세지를 주는 친구관계를 원하지 않아요. 벤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벤은 본인이 잘못해서 아론이나 찰리가 본인에게 냉담하게 대한다고 착각을 할 수 있어요. 벤이 비자폐 아동과도 잘 어울려 살도록 최선을 다하지만, 그들이 벤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전제하에서일 뿐이에요. 학교가 뉴로 다이버전트 아이들에게 더 안전한 곳이 되기를 원합니다.”

자폐는 취사선택할 수 없지만, 학교는 취사선택할 수 있다

자녀가 다수와 달라서 약자의 위치에 놓이기 쉬운 사람들은 고민하는 사람이고 결국 저항하는 사람이 된다. ‘혁명적인 인식 전환’은 예전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인생의 기준과 기대를 갖고 살도록 이끄는 법이니 잔뜩 시무룩한 아들에게 진심을 다해 말해줬다.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네 인생을 짓밟게 내버려 두면 안돼. 단지 <네가 너로 산다>는 이유로 놀리거나 무시하는 아이에게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그 후에 일어나는 일은 엄마 아빠가 책임지고 처리할 거야. 그리고 그게 무슨 일이 됐든 엄마는 영광으로 받아들일 거야.”

요즘 서서히 호주의 홈스쿨링 제도에 대해 공부한다. 주변의 자폐 커뮤니티에서 홈스쿨링을 하는 당사자들을 종종 보고 듣는데, 단지 학교에서 심각한 학교폭력을 경험하지 않아도, 학업 상으로 크게 뒤쳐지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홈스쿨링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 가령, 호주의 특수학교는 장애의 유형과 정도에 따라 선택지가 다양하고, 일반 학교도 사립부터 준사립이라 불리는 종교 학교, 공립까지 다양하고, 한국처럼 대안학교도 여럿 있다. 요새는 뉴로다이버전트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일반 공립학교 중에는 자폐/뉴로 다이버전트 친화적인 환경과 교육과정을 통합해서 운영하는 학교들이 늘고 있어 부모들의 선택지를 확장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홈스쿨링을 선택하는 부모들이 종종 있다.

누군가는 일반학교 통합에서, 누군가는 특수학교에서 적응을 잘하며 살아간다면 또 누군가는 제도권 교육 밖에서 더 성장하고 고유한 빛깔의 꽃을 피워낼 수 있는지도 모른다

자폐를 이해하면서 ‘제도권 학교 교육은 필수’라고 믿었던 기존의 내 교육관에도 미세한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물론 가능하다면 벤이 제도권 교육 안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관계를 맺으며 무사히 학령기라는 여정을 통과하길 바라고 그 과정을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교육의 형태와 방식에도 다양한 길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만약 제도권 교육이 벤의 성장과 발달, 그리고 자아 인식에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인 손상(damages)을 더 많이 제공한다면 언제든 악세사리 풀어 내듯 벗어 버리겠다는 뜻이다.

독학에 능하고, 본인이 좋아하는 일에 선택과 집중을 할 줄 아는 열정적인 아이들

주로 비자폐인들이 관계 중심(relationship-oriented)의 인간관계를 선호하는 성향을 지녔다면, 많은 자폐인들은 아주 강한 흥미 중심(interest-oriented)의 인간관계를 추구한다. 이 말이 자폐인들이 타인과의 관계 맺기를 꺼리는 반 사회적인 사람이란 뜻이 아니라, 비슷한 흥미를 지닌 사람들끼리 훨씬 수월하고 돈독한 관계를 맺기 쉽다는 뜻이다.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 자폐인들이 종종 갖게 되는 별명인데, 자폐의 아주 강한 특성 중 하나가 본인이 좋아하는 일에 꽂히면 지침없이 매진하고 관심의 깊이와 폭을 스스로 확장하고 열중하는 능력 때문이다. 자폐의 세계를 외부자의 눈으로 본 사람들에게는 단점이고 약점이지만, 내부자의 눈으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재능이 되고 강점이 된다. 그래서 나는 벤을 이렇게 묘사한다.

“독학에 능하고, 본인이 좋아하는 일에 선택과 집중을 할 줄 아는 열정적인 아이”

마치 심리상담사와 교육전문가를 겸한 듯 교육자로서의 전문성과 상담 능력을 겸비한 교감과의 대화가 만족스럽게 마감되고 몇 가지 추후 조치를 약속 받았다. 호주 특수교육법에서 정한 권리를 바탕으로 협의된 내용을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 가장 먼저 벤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기

- 매 텀마다 공식적인 SSG 회의 진행과 IEP(individual Education Plan)를 작성해서 벤의 성장과 발달을 일관성 있게 지원하기

- 벤이 만나고 있는 감각 통합사의 학교 방문을 권장하여 학교 현장에서 벤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벤에게 직접 임파워링(empowering, 당사자에게 자신감을 고취시키고 당사자가 직접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일)을 시키기

- 교육환경과 수업적인 면에서 벤의 특별한 욕구에 맞는 지원 방식과 요령을 감각통합사가 담임과 소통하여 맞춤형 교육을 최적화 시키기

- 학교 구성원들에게 뉴로다이버전트에 대한 인식과 이해 교육을 강화하기

회의를 끝내고 나오는 마음이 든든해졌다. 도움을 요청하는 부모가 굴욕감이 들지 않게 소통하는 문화, 장애 아동과 가족의 지원 요청이 당당한 권리임을 인식하는 교육, 아동의 지원을 위해서라면 외부인들에게도 학교의 문을 활짝 개방해주는 열린 학교 덕이다. 그리고 장애 당사자와 부모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입장이 아닌 학교측과 동등한 권력을 지니고 협상의 테이블에 앉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안전망을 쳐준 호주 특수교육법 덕이다. 어쩌면 벤이 무사히 공교육의 터널을 건강하게 통과할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어 본다.

편집인 주) 이 원고에서 '자폐인'은 DSM-5에서 명명하고 있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말하며, 상대적으로 지능이 높고 기능이 좋은 자폐도 함께 아우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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