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아들과 호주로 떠난 엄마, 미안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저자 이루나

우채윤 승인 2020.11.05 13:14 | 최종 수정 2020.11.06 11:00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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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이루나 : 한국에서 교사였고,

ADHD 아들과 가족을 위해 호주로 이민을 선택했다.

 

“I cannot emphasise enough the importance of  a good teacher (좋은 교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 Temple Grandin

(템플 그랜딘:  미국 콜라라도주립대학교 교수이자 자폐인인 그녀는 천재적인 동물학자로, 자폐증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저서 및  여러 강연을 통해 노력하고 있다.)

 

엄마가 되었다

발달이 달라 보이는 아들이 내게로 왔다. 오랜 기다림 끝, 입양을 고려하는 중에 기적처럼 임신을 했을 때 나도 모르게 “브라보!” 를 외쳤다. 앞으로 내 인생은 모든 것이 순조롭고 완벽하게 흘러 갈 듯 보였다. 준비한 임신,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이 있다! 라고 그때는 착각을 했다. 커가는 아들 벤(가명)은 내 생각이 오만이었음을 쉽게 깨닫게 해줬고, 한여름 바짝 말라 버린 우물 바닥 드러내듯 나의 인내심의 바닥과 한계를 수시로 드러나게 했다. 부끄러웠다. 준비된 좋은 엄마는 고사하고 먹고 입히고 재우고 놀리는 일들 중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 속수무책의 연속이었다.

벤의 엄마로 살아내는 일은 새로운 탄생을 의미했다. 첫 엄마 경험, 그 자체가 이미 벅차고 시행착오 투성이들인데, 거기에 ‘발달 장애아의 엄마’라는 명함은 숨이 턱턱 찼다. 대부분의 가임 여성들이 ‘엄마’라는 역할을 기대하고 소망하며 임신과 출산을 하지만, 어느 누가 ‘장애아의 엄마’를 소망하며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할까?  그래서 초창기에는 당혹감과 깊은 불안과 우울이 엄습했다. ‘장애 세계’로 향하는 편도 티켓, 한번 발을 넣는 순간 돌아오는 티켓은 주어지지 않는 미지의 세계가 내 삶에 훅 들이닥쳐 방향과 속도를 틀어쥐었다. 그래 어차피 인생은 후진 없는 일방통행,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감당하며 살아 보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벤 때문에(혹은 덕분에) 우리 가족은 삶의 근거지를 호주로 갈아 탔다. 부부가 호주를 와 본 적도 없고, 지인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솔직히 멜버른이 호주의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한국을 떠났다. 벤을 품어 줄 넓은 자연이 필요했고, <다름>에 좀 더 허용적인 이웃들이 필요했고, 특히 <다양성>에 관대한 교육이 필요했다. 역설적이게도 한국에서 교사로 근무했던 탓에 오히려 손에 쥔 것을 포기하고 불확실한 것을 선택하는 일이 수월했다. 한국의 교육 제도와 문화는 아직은 벤이 태어난 대로 존중 받으며 살기에는 무리라는 것을 내 손바닥 손금 읽듯 읽어낼 수 있었다.

 

“종종 호주나 캐나다로 이민 계획을 세우거나 떠나는 가족들을 만나요.”

한국에서 20여년 넘게 특수교사로 근무 중인 지인의 증언처럼 우리 가족도 그 대열에 합류를 했다. 나처럼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미안함과 벤을 위한 안도감이 교차했다.

운이 좋았다. 주변의 한국 이민자들은 불편하다고 말하는 마당 딸린 주택 살이는 내 인생 버킷 리스트였고, 외식을 좋아하지 않는 탓에 저녁 5시 경이면 대부분 셔터를 내리는 각종 상가나 음식점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국의 회색 빌딩숲에 질려 있던 나에게 사방에 널린 초록의 자연과 파란 하늘은 매일 접해도 질리지도 않았다.

상대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일이 훨씬 수월해지고 부담이 줄었다. 어디에 살던 집 근처엔 넓고 한적한 공원들이 지천이었고,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기다리고 있었고, 피크닉 시설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온갖 감각이 예민해서 한국에서는 현관 문을 나서는 것조차도 고통과 공포였던 벤에게 호주에서는 새소리, 빗소리, 바람소리가 일상의 디폴트(기본적으로 지정된) 값이 되었다. 그래서 호주에 살면 반은 자연이 아이들을 품어 키운다.

호주에서도 발달이 다른 아이의 학부모로 사는 일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보통 아이들에 비해 끝없이 손이 가고, 수시로 마음을 졸이고, 정성을 들여야만 그나마 일상이 턱걸이 식으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벤을 일반 공립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수시로 학교 주위를 서성이고, 교실 앞에서 까치발로 안을 들여다 보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산만하고 충동적이어서 먼저 행동하고 생각하는 아이”

벤처럼 이런 성향을 가진 아이들을 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주의력 결핍 과다 행동 장애)를 지닌 아이라 부르고, ADHD는 뇌의 신경 발달이 일반인과 달라서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는 신경발달장애(Neurodevelopmental Disorder)이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대중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진단이 활발해진 걸로 알고 있지만, 이 특성을 지닌 모든 아이들이 일반인이 쉽게 감지해 낼 만큼 산만하고 충동적이고 행동이 크고 집중력이 현저하게 낮은 것은 아니다.

벤만 해도 일반인이나 담임 교사들은 내가 진단명을 말해주고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는 잘 인지하지 못한다.

 

모든 발달장애의 분야가 그렇듯, 오늘 ADHD를 지닌 한 아이를 만났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ADHD를 지닌 아이들 중에서 한 명을 만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정형인(Neuro Typical)이란 범주 안에서 모두 다른 개성을 지닌 존재이듯, 비정형인(Neuro Diversity, 뇌신경이 다양한 사람들을 ‘장애’란 용어 대신 지칭하는 표현)들 또한 그 범주 안에서 각자의 개성을 지닌 고유한 존재들이다. 다시 말하면, 정형인과 비정형인 모두 인간이란 범주에서 공통점을 공유하는 하나의 인류다.

한국에 살 때 아들 세명을 키워낸 언니도 벤이랑 하루를 보내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벤의 특성을 알지 못하는 지인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난 하루도 못 키울 거예요.” 또는 “엄마가 너무 우유부단하거나 친절해서 아이가 버릇이 없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보통 나같은 엄마들은 억울하다. ‘당신 애처럼 키우기 쉬운 애는 열명을 데려와도 키우겠어요.’ 란 말을 쏟아 붓고 싶지만, 내 아이의 어려움을 팔아 엄마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미숙한 행동 같아서 차마 말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대신 세상의 편견과 오해 속을 헤집고 살아오다 보니 이제는 그런 득 없는 말 들엔 미소 한번 날려주는 여유와 배짱도 생겼다.

 

ADHD는 단순하게 충동성과 산만함 그리고 집중력의 문제로 귀결되지 않는다.

많은 해당 아동들은  정도는 다르지만 감정조절의 어려움(emotional dysregulation), 사회성 문제, 한 과제에서 다음 과제로의 전환의 어려움(transition), 행동조절 문제(behaviour issues), 과제를 수행해 낼 수 있는 실행 기능 (executive functioning) 등 부차적인 어려움들이 동반되고 벤이 일상적으로 직면하는 난관들이기도 하다.

 

호주 교육의 매력, 엄마로서 더이상 미안하지... 않다.

<담임 찬스, 교장 찬스>, 어쩔 수 없이 나는 수시로 찬스 카드를 꺼내 드는 엄마가 되었다. 부모가 아무리 아이의 어려움과 지원 요령을 알고 있어도 학교에 입학 한 후부터는 교사나 학교의 이해와 지원이 필수다. 일반 아동들에게도 일년간 함께 지낼 담임교사의 자질과 역량은 중요하지만, 발달이 다른 아이들에게는 차원이 다른 절대절명의 요인이 되곤 한다. 등교 전쟁, 담임 교사 잘 만나면 일년간 아침마다 학교 가기를 거부하는 아이와의 전쟁을 막을 수도 있다.

호주 학교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구성원들간의 소통 창구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고, 민주적인 소통이 활발하고, 특히 어려움을 호소하는 가정에게 먼저 우선권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실례를 들면 아이 학교의 교장은 새 학년 학급 반 편성 및 담임배치에도 학교 적응이나 발달 상에 어려움이 있는 가족에게 가장 먼저 요구 사항을 문의하고 합리적이고 실질적인 편의를 제공한다. 교사들 또한 이들의 특별한 요구에 맞게 교육 환경과 내용을 제공하는 역할, 즉 학생들의 개인별 특성에 맞춘 교육지원을 당연한 교사의 책무로 받아들인다.

“미안한데, 벤에게 과제를 줄 때는 조금씩 여러 번 나눠 주고 시각적 자료를 제공하면 더 쉽게 수업을 따라갈 수 있어요.”

“미안한데, 벤이 상황에 맞지 않는 충동적이고 엉뚱한 질문을 자주 할 텐데 버릇이 없어서 그러는게 아니니까 질문하는 요령이나 예절을 가르쳐 주세요.”

학기 초마다 만나는 새로운 담임교사에게 어렵게 말을 건네곤 했다. 그 때마다 교사들은 한결같이 상냥하게 말했다.

“교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혹시라도 벤을 지원하기 위해 내가 알아야 할 방법들이 있다면 언제든 알려주세요.”

 

호주 대부분의 초등학교에는 특수학급(한국의 학습 도움실)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특수교사가 없으니 일반 교사가 해당 아동들의 요구에 맞게 완전한 통합 지원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학교와 교사는 장애 아동을 거부할 권리가 없으니 부모나 아동이 일반 학교를 선택했다면 그들의 결정과 특별한 요구에 맞게 환경을 조성하고 최대한 지원을 해줘야 한다. 만약 장애 아동의 특성상 담임 교사 혼자서 감당하기 어렵거나 해당 아동에게 적절한 지원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교육부에서 보조교사(Teacher Aide, 한국의 보조 실무사)를 채용하도록 돕는다.

 

“장애인들에게 천국인 나라” 호주에서 만난 한 한국인 이민자는 호주를 이렇게 칭한다.

좀 과한 표현인 것이 일반인들에게도 존재하지 않는 천국이 장벽이 많은 장애인들에게 존재하기 어렵겠지만, 크게 반박할 수는 없다. 장애를 지닌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리고 한국 교사로서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호주란 사회는 전반적으로 다름(장애도 다름의 일종으로 본다면)에 관대하고 수용적인 사회다.

그 주된 배경에는 “장애와 비장애 아동의 완전 통합교육”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여긴다. 호주 학교의 일반 교사들은 자동적으로 매년 자폐성 장애, 불안장애, 지적장애, ADHD 등을 진단받은 아이들을 일상다반사로 만나야 하고 부모와 전문가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당 아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일대일 맞춤식 교육 방법들을 익혀 나가야 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교사들의 장애 이해와 인식이 향상될 수 밖에 없고, 교사의 인식개선은 결국 매년 수많은 일반 아동들에게 질 높은 다양성에 대한 이해 교육을 제공하는 배경이 된다.

호주 생활이 익숙해진 지금은 교사에게 벤이 필요로 하는 지원을 요청하는 일이 미안하지 않다. 대신 언제나 존중과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 심지어 연말에 담임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 일은 제법 근사한 일이기도 하다.

“한해 동안 고마웠어요. 일반 아이들 중에도 다루기 어려운 아이들이 있고, 아직 부모가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는데, 벤 덕분에 다양한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하고 도와주는 계기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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